일회용 아내
세라 게일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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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소개에 자신의 클론과 바람을 피운 남편을 가진 한 여성의 이야기라는 정신 나간 줄거리를 보고

너무 궁금해져서 읽게 된 책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작가 경력 대비 수상 경력이 화려해서 더 기대가 컸다.

책을 읽기 전에 든 의문은 보통 외도라고 하면 배우자와는 조금 다른 상대를 추구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굳이' 현재의 배우자랑 똑같이 생긴 클론이랑 바람을 피울 이유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에 앞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에블린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에블린은 여성 생물학자로서 복제인간에 관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큰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평소 연구밖에 모르는 워크홀릭으로 살아온 에블린은 같은 분야의 교수인 네이선과 결혼했지만 그와

아이를 가지는 문제로 크게 대립한다.

남편이 포기한 줄 알고 지내던 어느 날, 에블린은 남편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훔쳐 자신의 클론을

만들었고 심지어는 그 클론이 남편의 아이를 갖게 됐음을 알게 된다.

그 클론의 이름은 마르틴이었고, 에블린은 마르틴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소설 속 복제인간은 근 20년 전 영화인 '아일랜드' 속 복제인간과 유사하다.

장기를 대체한다거나 암살이 우려되는 정치인을 대신해 총알을 맞아주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고 폐기될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에블린은 철저하게 생식 기능이 제한된 클론만을 만들도록 연구했다.

하지만 네이선은 그 연구를 이용해 자신의 2세를 만들 수 있는 클론을 만들었고 에블린은 분노한다.

이쯤에서 작품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작가가 제시한 복제인간 제작 방식은 다소 의아하다.

논리적으로 말이 좀 안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에서는 복제인간이 원본 인간과 동일하게 보일 수 있도록 '조건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면, 지금 나의 클론을 만든다고 하면 30대부터 생기기 시작한 쥐젖이 목에 있어야 한다.

내 목에 쥐젖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목이 매끈한 내 클론을 보면 이상하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론이 지금의 나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30대 이후에 생긴 쥐젖을 일부러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 과정이 '조건화'이다.

하지만 이 조건화라는 방식 자체가 장기를 대체하기 위해 제작하는 클론들에게는 불필요한 과정이다.

장기만 떼어내고 폐기하면 되는데 굳이 원본과 비슷하게 생길 필요까진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암살이 우려되는 정치인을 대신해 총알을 맞아주는 클론이라면 원본과 똑같이 보여야 할테니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만약 클론 암살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정치인의 정치 생명은 클론이

목적을 달성하는 그 즉시 끝나기 때문에 수요가 있을리 만무하다.

클론이든 원본이든 이미 사람들 인식에는 총맞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정치인이 정치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죽은 자가 클론이라는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자기 대신 클론을 죽였다는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이다.)

이 외에도 클론의 생활 습관을 코딩할 수 있다거나 원본의 기억을 선별적으로 정리해 입력할 수 있다는

것 등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조금 말이 안 된다 싶은 부분들이 분명 있다.

게다가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 출생신고가 없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아예 불가능한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보면 애초에 말이 안되는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이는 문화적 차이이므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흠잡기 어려웠다.

400페이지 정도로 적당한 길이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중간에 맥 끊기는

느낌 없이 쭉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생각 거리를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어릴 적 아버지의 억압적인 모습을 보며 자라온 에블린이 연구밖에 모르면서 타인들과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이 1인칭 시점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남편인 네이선과도 조금 더 가까운 연구자 동료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내가 사라졌다가 조금 이상해져서 돌아오면, 그 차이를 느꼈을까?

아니면 자신이 고치고 싶은 부분만을 봤을까?

우리는 과연 서로를 제대로 보긴 했을까?

(pg 294-295)

자신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조금 더 네이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마르틴을 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 변화도 작품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저 나라는 여성이 결혼하면 성도 바꾸지만)

하지만 상대와 함께 맞춰 살아가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조차 없다면 당연히 그 결혼은 하면 안되는 것이아닐까.

내가 감명을 받은 그녀의 부분들은 모두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건 내게서는 결핍됐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이걸 견뎌내려면 그녀를 조금이라도 미워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보다 낫다는 걸 진심으로 믿는다면,

원래의 내이선이 그녀를 만든 건 옳은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pg 278-279)

작품을 읽기 전에 내가 가졌던 질문에 이제 답하자면, 네이선에게는 설령 클론이라 할지라도 에블린의

일부를 진심으로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정신병자의 미친 형태이긴 하지만 그가 저지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에블린을 꽤나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에블린은 작품 내내 네이선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또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처했다면 배우자와 아이를 갖는 문제로 대립할 경우 그냥 이혼

하고 아예 다른 여성을 찾는 '합법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네이선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에블린과 자신의 DNA를 가진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이 사고방식이 나는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다.

(물론 에블린의 우수한 DNA만을 원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에블린이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여성이 아닌 이상에야 이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일인가 싶긴 하다.)

복제인간은 아직도 먼 일처럼 느껴지고 만약 등장한다 할지라도 이런 형태로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인간을 복제한다는 행위에는 반드시 그 처분 방식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보여준 윤리적인 문제 외에도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SF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클론을 소재로 인간관계라는 주제를 풀어낸 스릴러

작품이라 생각하고 읽는다면 더 훌륭하게 느껴질 작품이었다.

아주 대단한 반전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는 스토리에 깔끔한 서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더 찾아보고 싶은 매력이 있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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