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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자신에게 다시금 전념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이기적이지도, 자기중심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이는 가치의 선언이다.
당신이 일을 하고 소비하고 생산해서 가치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pg 316)
표지만 보면 다소 꼰대스러운 제목을 가진 책.
하지만 내용은 전혀 꼰대스럽지 않다.
오히려 '요즘 애들'에게 '노오오오력'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꼰대들에게 가하는 일침에 가깝다.
이 책은 '밀레니얼'이라 지칭되는 현재 20대에서 30대 후반의 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혹자는 이 밀레니얼이라는 용어가 너무 광범위하게 세대를 묶어 사회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지만,
어쨌든 저자는 본인도 밀레니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학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바를 강한 어조로 풀어냈다.
개인적으로는 나 역시 이 세대에 속하고 있고 현재를 사는 젋은 세대들에게 조명하고 있는 책들을 자주 보는 편이기 때문에
이 책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책 표지에 적힌 부제가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해주고 있다.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이미 우리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최초의 세대로 불린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뜩이나 움츠려든 취업 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아예 넉다운 상태가 된 듯 하다.
운이 좋게 취업에 성공한 자들은 자신의 자리에 안도의 한숨을, 아직 자리를 찾는 자들은 쫓기는 현실에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를 '번아웃'으로 시작하고 있다.
밀레니얼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번아웃이 일상화된 생활'을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가면 갈수록 어릴 때부터 상당한 수준의 교육과 경쟁에 내몰린다.
우리나라야 한 달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영어 유치원에 정원이 모자라서 보내지 못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판국이니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미국의 젊은 세대 역시 다르지 않다는 점이 신선했다.
이런 '번아웃의 생활화'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계속 일해야 한다는 걸 우린 어디서 배웠을까? 학교에서 배웠다.
나는 왜 계속 일했을까? 직업을 갖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직업을 얻은 뒤에도 쉬지 않고 일한 까닭은 뭘까? 얻은 직업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pg 18)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은 모든 부모가 항상 걱정하는 모든 것을 걱정했다.
거기에 더해 계층의 하향 이동성이 만연한 시기에 중산층 지위를 획득하거나, 유지하거나,
물려줄 수 있을지에 대한 싶은 불안을 품고 있었다.
한 세대의 아동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노력하라고 가르쳤다.
불안은 응결되어 새로운 육아의 이상, 행동, 기준들을 낳았고 그것들은 성취 지향적인, "좋은 육아"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pg 88)
결국 번아웃이 지금의 밀레니얼을 정의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비단 우리 세대만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문제는 이런 번아웃의 생활화가 세대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심화된다는 데에 있다.
번아웃된 부모일수록 아이를 더 지치게 만드는 교육에 몰두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삶이 피곤하고 변변치 못하니 자신의 아이는 이런 생활에서 탈출하게 해주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기게 되고,
이 때문에 아이 역시 번아웃의 소용돌이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요새 아이들>에서 해리스는 자녀의 가치를 키우려는,
즉 이력서를 만들어 주려는 강박이 어떻게 집중 양육의 신조와 교차했는지 지적한다.
예를 들어 즉석에서 열리는 공놀이 경기는 장차 이력서에 한 줄을 추가할 경험이 되도록 연중 계속되는 리그 스포츠로 조직되었다.
재미로 하던 악기 연주는 이력서에 추가할 한 줄이 되기 위해 관객 앞에서 평가받는 연주로 바뀌었다. (pg 110)
이러한 교육의 사슬 끝에는 물론 대학이 있다.
이름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계층의 하향이동을 막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가능케하는 최소한의 기본요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특이한 점은 저자가 계층의 상향이동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고 부모의 재력이 아이의 대입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보다 잘 살기가 어려우니 당연히 대부분의 밀레니얼 입장에서 바라본 계층은 밑으로만 이동하는 것처럼
보일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엇다.
또한 저자의 대학 비판은 비록 학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녹을 먹는 입장에서 통렬한 비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대학은 우리 부모들의 경제적 불안을 낮춰주지 못했다.
중산층 지위를 보장하지도 않았고, 많은 경우엔 취업 시장에 현실적으로 대비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pg 104)
대학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었을지 모른다. 작은 동네나 나쁜 상황에서 당신을 빼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밀레니얼에게 대학 학위는 우리와 우리 부모들에게 약속했던 '중산층의 안정'을 안겨주지 않았다.
멋들어지게 가장해 봐도, 실체는 같다. 우리가 얻은 건, 더 많은 노동일 뿐이다. (pg 128)
그밖에도 저자는 밀레니얼의 번아웃 증상을 심화시키는 요건으로 SNS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서평 블로그 역시 취미의 일환으로 지속하고 있을 뿐이지만,
내가 밀레니얼이라는 분류로만 보면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할 것이기 때문에 나보다 어린 세대일수록 이 문제는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SNS는 이렇게 우리에게서 번아웃을 상쇄해 줄 순간들을 빼앗아간다.
경험을 기록하는 데 집착하는 사이, 우리는 실제 경험에서 멀어진다.
또한 SNS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멀티태스킹을 시킨다. 과거엔 여가에 사용되었던 시간을 침식시킨다. (pg 261)
인터넷은 우리 번아웃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삶을 더 쉽게 만들어 주겠다는 인터넷의 약속은 완전히 깨졌다.
모든 일을 다 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아가 그것이 의무라고 환상을 일으킨 데에 인터넷은 분명 책임이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해내지 못할 때 우리는 망가진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탓한다. (pg 278)
책의 후반부에서는 육아를 둘러싸고 밀레니얼이라는 비교적 젋은 세대에서도 젠더 불평등이 존재하며
이것이 번아웃의 또다른 원인이라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나는 남자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모두 수긍이 가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저자가 제기한 밀레니얼의 변명 혹은 항변을 쭉 정리해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걸까?
저자는 구체적인 행동 목록을 제시해줄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당신을 망가뜨린 게 우리 사회일 때, 나는 당신을 고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려 했다. (pg 382)
저자는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의 문제이며,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직업을 점점 더 위험하고 불안하며
취약하게 만드는 제도와 기업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특히 밀레니얼의 상당수가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긱 워커들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쿠팡맨이나 배민라이더 같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기업들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사실상 고용을 통한 책임(복지, 교육, 각종 사회보험 등)은
전혀 지지 않은 채 노동력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을 인지하고 개인적인 저항, 그리고 투표를 통한 사회적 저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자신에게 다시금 전념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이기적이지도, 자기중심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이는 가치의 선언이다.
당신이 일을 하고 소비하고 생산해서 가치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pg 316)
사실상 사회문제라는 것이 뾰족한 해결책이 제시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저자의 서술 방향에는 불만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미국 사회가 우리 사회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종이나 종교로 인한 문제를 제외하면 저자가 서술한 수많은 문제들이 바로 대한민국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젊은 세대의 고통이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면 확실히 지금의 경제 체제에는 무언가 큰 결함이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저자의 책은 우리 세대들에게 지금의 현실을 인식하는 쓰지만 좋은 약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밀레니얼들은 폄하당했고 오해받았으며 애초에 실패하게끔 설계된 상황에서 애를 쓴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만큼이나 우리 자신을 혹사시킬 인내심과 적성과 자원이 있다면, 우리에겐 분명 싸울 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연기를 피우고 있는 잿더미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최고의 자아가 훗날에 추억할 나쁜 기억일 뿐이다.
밀레니얼들을 과소평가하고자 한다면, 마음 단단히 먹어라. 우리는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니까. (pg 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