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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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pg 49)



벌써 세 권째 읽는 김상욱 교수의 책.

유튜브가 대중화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나 양질의 컨텐츠를 무료로 무한정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쓰레기같은 컨텐츠에 대한 접근도 쉬워졌지만;;)

이 책 역시 유튜브를 보던 어느 날, 김상욱이라는 익숙한 이름에 이끌려 봤던 영상에서 소개되어 구매하게 되었다.

글도 잘쓰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는 말투 역시 듣기 좋아서 유투브로 그의 강연을 듣다보면 

뭔가 이해가 잘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물론 다 보고 나서 100% 이해했는지를 물으면 자신이 없어진다.)


그의 저작들은 과학 지식을 친절하게 알려주면서도 그 속에 인문학적, 예술적 성찰도 함께 담아내곤 한다. 

이 책 역시 이전의 '과학공부'처럼 특정한 주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에세이 형식으로 세상 만사를 과학적 지식으로 풀어낸
책이라 보면 된다. 
따라서 이론 물리학자의 책이지만 진입장벽이 높지는 않았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주는 과학적 지식들이 마냥 가볍지만도 않다. 


하지만 원자 내의 전자는 특별한 반지름을 갖는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유는 모른다.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는 그냥 점프를 해야 한다.

문제는 점프를 하는 동안 궤도 사이를 연속적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한 궤도에서 사라져서 다른 궤도에 짠 하고 나타나야 한다. 

역시 이유는 모른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보어의 이론을 싫어한 것도 당연하다. (pg 122)


양자역학 관련 책을 보다가 이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되었었는데, 이해가 안되는 것이 당연했다.

이유를 지금도, 물리학자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저자가 이 대목과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었다.


"우주가 이런 법칙으로 움직이겠다는데 인간이 이해를 하고 말고가 왜 중요한가?"


이미 수학적으로 증명이 다 된 부분이어서 그냥 이게 진리인데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불평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는 것이다. 

역시 평생을 문돌이로 살아온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이고도 신선한 발언이었다. 

아래의 구절과 일맥상통하므로 이는 원문을 그대로 담아보았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지구상에서 물체가 1초에 4.9미터 자유낙하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중략-

4.9가 아니라 5.9였으면 더 정의로웠을까?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나타난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와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pg 251)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우주보다 놀랍다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pg 251) 



이런 식으로 과학 지식에서 출발해 결국에는 인간과 사회, 철학적인 질문까지 이어지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책의 제목인 떨림과 울림도 세상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원자는 지속적으로 움직이고(떨림) 있고, 움직임은 주변에 장(울림)을 만든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pg 173)


결국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다른 모든 만물과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라는 철학적 사유를 원자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저자의 책에서는 비단 과학적 지식 뿐만 아니라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예술적 통찰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과학자로서 과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종교나 철학은 자신의 이론으로 때론 지나치게 많은 것을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과학자가 보기에 그냥 모른다고 했으면 좋을 부분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과학은 무지를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중략-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다. -중략-

과학의 진정한 힘은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데에서 온다. (pg 269)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pg 269-270)



올해 처음으로 대학 수시모집에서 인문계와 자연계 학생 모집 인원이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출처: 베리타스알파,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388117)


워낙 인문계열이 사회 진출에서 불리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공계 역시 순수학문 보다는 의치약대나 공대쪽으로의 지원이 많아진 

결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계로의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자연계 진학율 향상이 사회의 합리성과 민주성 증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저자의 책 중 기존에 읽었던 것들과 비교해보면 '과학공부'보다는 조금 어렵고 '양자공부'보다는 쉬웠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타고난 문돌이 기질을 바꿔보겠다고 이런 저런 과학 책들을 기웃거려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책만큼 쉽게 읽히는 과학책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모쪼록 저자가 앞으로도 이런 대중적인 과학 서적을 많이 출간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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