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개 부탁드려요 - 21세기 신인류, 플랫폼 노동자들의 ‘별점인생’이야기
유경현.유수진 지음 / 애플북스 / 202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상깊은 구절
"기업에서 다음 달 월급을 10만 원 깎는다고 하면 다들 난리가 날테지만, 플랫폼에서는 매달 단가를 500원 깎으며 
 '왜? 라이더들이 많으니까.'라고 하면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죠.
 AI라든지 알고리즘이 내놓은 거의 신적인 결정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면 비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일 뿐이니까요." (pg 121)


집사람이 쿠팡 새벽배송을 처음 사용했던 날이 생각난다.
잠들기 전에 주문한 아이 기저귀가 출근하려고 문을 열자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출근 인사를 마치고 기저귀 박스를 집안에 내려놓자 집사람이 '세상 진짜 좋아졌다'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불현듯 '이걸 갖다준 사람은 대체 몇 시에 일을 시작한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스치고 지나쳤던 문제의식을 제대로 조명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긱 워커, 각종 플랫폼을 통해 단기성 계약을 통한 노동을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배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면서 배달기사들의 수입이 짭짤하다는 둥, 자영업 때려치우고 배달 시작한다 등등의 뉴스들도 제법 들려왔다. 
정부를 까기 위한 문구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결국 전 국민의 배달기사화냐라는 식의 조롱도 들려올 정도였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배달기사들은 진짜 떼돈을 벌고 있을까?


이 책은 배달기사 등 각종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책이다.
책의 제목에 포함된 '별 다섯 개'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일을 한 후 고객들로부터 받는 평가를 의미한다.
이 평점이 결국 다음 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별점에 상당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최근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영업자들이 힘든 이유'라면서 진상 리뷰를 쓰는 음식점 이용자들에 대한 비판들이 올라오고는 하는데, 
음식점 외에도 가사노동, 운전, 배달, 메이크업, 심지어는 애완견 산책까지 내가 모르고 있던 다양한 분야의 플랫폼이 구축되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제공한 서비스를 기반으로 소득을 얻고 고객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면 계속해서 다음 일을 수주받을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평소에 잘 하다가도 최근에 평점이 몇 번 깎이면 결국에는 일거리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플랫폼 노동자 입장에서는 플랫폼에서 일을 받지 못하면 결국 실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이다. 

플렉스를 매일 울고 웃게 하는 배송 단가와 배정 물량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쿠팡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수년간 누적된 수요와 공급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새로운 '채용 조건'을 만들어 낸다. (pg 17)

그러면서도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부차적으로 소요되는 모든 비용과 위험은 온전히 본인들의 몫이다.
이들이 모두 개인사업자들이기 때문이다. 
배달을 예로 들면, 배달 수단인 차량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온전히 배달기사가 부담한다. 
때문에 유가가 치솟으면 때로는 최저시급보다 못한 급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최저임금이 아무리 오른다 해도 이들이 받는 수수료는 이와 무관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평점이 중요한 플랫폼에서는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가사노동이라면 본래 계약은 청소만 해주는 것이지만 사비를 들여 구입한 방역 제품으로 소독까지 서비스로 해주는 등 
부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받는 수수료 단가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높은 별점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비용을 추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사용자 측면에서는 그러한 경쟁이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출혈경쟁이 되고 있을 뿐이고, AI로 돌아가는 플랫폼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플랫폼에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권력의 정도가 달라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플랫폼 기업의 책임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비용은 낮아지는 반면, 모든 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결국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장시간 근로를 하거나 불안정한 노동을 감수해야 하며, 
이런 구조적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pg 58)

"기업에서 다음 달 월급을 10만 원 깎는다고 하면 다들 난리가 날테지만, 플랫폼에서는 매달 단가를 500원 깎으며 
 '왜? 라이더들이 많으니까.'라고 하면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죠.
 AI라든지 알고리즘이 내놓은 거의 신적인 결정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면 비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일 뿐이니까요." (pg 121)
 
이렇게 사람을 갈아 넣음으로써 돌아가는 플랫폼들은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며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겠다는 듯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반면 체스판을 설계한 플랫폼 기업은 해마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9년 창업한 우버는 2019년 뉴욕 증시 상장 당시 1200억 달러(135조 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단숨에 100년 기업 GM과 포드를 뛰어넘었다. 
우버 기사들의 시간당 수입이 캘리포니아주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8.5달러인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pg 204)
 
우리나라에서도 2조를 줘도 안판다고 했던 '배달의 민족'은 결국 5조에 팔렸다. 
배민이 처음 스타트를 끊은 것이 2010년이니 불과 10년만에 이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이렇게 돈을 쓸어담고 있을 때 그 속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팬데믹 시대, 배송 박스를 든 쿠팡 플렉스들은 마치 어릴 적 우리에게 선물을 전해 주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다.
산타클로스가 목숨을 걸고 굴뚝을 통과해야 했다면, 팬데믹 시대 산타클로스는 감염병의 위험을 무릎쓰고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산타클로스보다 선물 박스에 더 관심이 많다. (pg 25)

아래의 페이지는 내 손으로는 차마 타자로도 못치겠어서 사진으로 옮긴다. 
 
(pg 112)

실상은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상대방의 서비스를 이용할 뿐인데도 마치 그 사람을 본인이 산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못 배워 먹었으면 상대가 저런 말과 행동을 모두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할까 싶기도 하고,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부류들은 대체 평소에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드는 구절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대로, 플랫폼 노동의 어두운 측면에 많은 포커스를 맞춘 책이다. 
하지만 경력 단절이 있거나 특별한 경력이 없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쉽게 뛰어들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 존재하고, 
자신이 고객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고객이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점 역시 플랫폼의 매력 중 하나이다. 
사실 위에서 제시한 대부분의 단점들이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몰리고 그렇기 때문에 단가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 장점들이 사실 단점을 야기하는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플랫폼에 기반한 경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호황을 누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속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또 다른 플랫폼의 이용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식 고용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플랫폼 노동자들이 대체하고 있다. 
극도로 유연화된 노동시장 속에서 노동의 단가는 계속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일개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 입장에서 무슨 뾰족한 대책이 생각날리는 없지만, 
그저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들을 대함에 있어서 최소한의 예우라도 갖추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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