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 조지 오웰 서문 2편 수록 에디터스 컬렉션 11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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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정부가 후원하지 않은 책에 대해 정부 부처가 검열의 권한을 조금이라도 갖는 현상은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사상의 자유와 발언의 자유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정보부 같은 정부 기구의 직접적인 간섭이 아니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여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특정한 주제들의 출판을 꺼리고 있다.

이 나라에서 지식인의 비겁함은 작가나 기자가 직면하는 최악의 적이다. (pg 9)



읽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게 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심지어 갖고 있던 책을 두 번 읽은 것이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버전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책과는 달리 초판본 서문과 우크라이나판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끌렸지만, 

예쁘게 단장된 표지도 눈길을 끌었다. 



에디터스 컬렉션이라는 시리즈로 발간되는 것 같은데, 이름답게 앞 표지만 보아도 소장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표지에는 나폴레옹일 것으로 보이는 돼지가 눈을 날카롭게 치켜들고 농장 뒤편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바라보고 있다. 

색감이 예쁜 핑크색이어서 보기에 좋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소설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표지 작가는 조지 오웰을 좋아하는 터키인이라 하는데, 원작에 대한 애정이 그림에 잘 표현된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책의 표지도 고난의 삶을 살았던 조지 오웰의 고뇌에 찬 듯한 모습이 담겨 있어서 좋긴 하지만, 

오래 되기도 했고 뭔가 너무 '세계명작전집'스러운 느낌이 강해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썩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별도로 내용을 기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번역가가 달라지긴 했지만, 이전에 소장하고 있던 책의 번역도 좋았고 이번 책도 좋았어서 딱히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 접한 버전에 실린 초판본 서문과 우크라이나판 서문이었는데, 길이는 짧지만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초판본 서문에는 조지 오웰이 영국에서 처음 동물농장을 책으로 내려고 했을 때의 어려움이 기술되어 있다. 

그 때 작가가 느낀 어려움을 아래의 문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가 후원하지 않은 책에 대해 정부 부처가 검열의 권한을 조금이라도 갖는 현상은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사상의 자유와 발언의 자유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정보부 같은 정부 기구의 직접적인 간섭이 아니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여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특정한 주제들의 출판을 꺼리고 있다.

이 나라에서 지식인의 비겁함은 작가나 기자가 직면하는 최악의 적이다. (pg 9)


즉, 정부 부처에서 출판을 막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두려워 출판사 스스로가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소련을 비판하는 소설을 발간하는데 왜 영국 출판사들이 눈치를 볼까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등장하는 사회적 배경을 읽다보니 금새 이해가 되었다. 


소련이 혁명 이후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노동 해방'을 표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에 대한 비판이 자칫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더 실제적인 이유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어쨌든 소련 역시 독일에 대항하는 연합군이었기 때문에 

동맹국을 비판하는 것을 주저했던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었다. 


소련에 열광하는 현재 분위기는 서구 자유주의 전통의 전반적인 약화를 나타내는 증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만약 정보부가 나서서 이 책의 출판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해도, 영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련에 무비판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므로, 소련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들은 검열뿐만 아니라

고의적인 역사 위조조차 기꺼이 참아 넘긴다. (pg 22)


하지만 조지 오웰은 자신이 사회주의자로서 당시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사회주의가 아닌 전체주의임을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을 통해 비판하고자 했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을 가로막지 말라는 메시지도 단호하게 전달한다. 


사상과 발언의 자유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여기에 나는 간단히 답한다. 

나는 그런 주장을 납득할 수 없으며, 지난 400년 동안 우리 문명은 그 반대의 주장 위에 건설되었다고. 

지난 10년 동안 나는 지금의 소련 정권이 대체로 사악한 존재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있다. (pg 24)


이어 등장하는 우크라이나판 서문에서는 조지 오웰이 직접 기술한 자신의 인생사가 짧게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조지 오웰이 왜 작품들을 썼고 어떻게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동물농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돼지와 인간이 마치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는 본인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나도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에는 '돼지가 모습만 다른 인간이 된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의도한 바가 두 계층 사이의 불협화음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다시 작품을 접하니 

돼지는 결국 인간과는 또 다른 형태의 지배계층이었다는 것이 더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 같았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두 책 모두 소설 내용은 동일하지만, 함께 실린 서문이 달라서 둘 다 소장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소장한 두 권 외에도 버전이 엄청 많은데,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어떤 서문이나 에세이가 포함되어 있는지

잘 보고 선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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