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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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그는 눈앞의 여자를 이 섬을 탈출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로부터, 어린 시절로부터, 아내와 친구들로부터, 그들의 모든 애정과 요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정신이란 텅 빈 도시를 영원히 헤매고 다니기 위해서. (pg 183-184)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콘크리트'와 고립을 상징하는 '섬'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묘한 느낌을 주는 제목에 끌렸다.

띠지에 '로빈슨 크루소의 전복적 오마주'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섬에서 벌어지는 고립과 생존의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졌다. 


보통 소설을 소개하면서 스토리에 대한 스포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워낙 옛날 작품이기도 하고 

스토리를 안다고 해서 작품의 매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스토리와 감상을 섞어 기술하고자 한다. 



잘나가는 건축가로 살아온 로버트 메이틀랜드라는 한 남자가 런던 근교의 입체 교차로를 지나다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차가 도로 아래로 추락하면서 다리에 큰 부상을 입게 되는데, 떨어진 곳이 하필이면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교통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매시간 주변을 지나가지만 누구도 그곳에 사고로 고립된 사람이 있을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그런 곳.

메이틀랜드는 부서진 차에 실린 자신의 짐과 주변 환경을 이용해 섬에서 탈출하고자 노력한다. 


작품 속 교통섬의 느낌이 나는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아래처럼 고가도로로 둘러싸인 널찍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속에 부서진 채로 방치된 방공호, 극장 건물 등의 잔해들과 메이틀랜드의 차와 마찬가지로 사고로 버려진 차들이 잔뜩 있는 

널직한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Under the Westway 

(사진 출처: https://www.r2h.co.uk/j-g-ballards-concrete-island)


일단 이런 교통섬에 갇힌다는 설정 자체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의 배경이 1970년대라는 것이다.

휴대폰이나 GPS 같은 시설이 전무하고 도로의 비상전화도 부상당한 다리로 가기에는 거리가 제법 된다고 묘사되어 있다. 

물론 현대사회라 하더라도 교통사고로 휴대폰이 파손되거나 비가 많이 와서 고장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요즘이라고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읽으면서 몇 년 전에 본 '김씨표류기'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이 훨씬 전에 나온 것이니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영화가 이 책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 영화가 고립이라는 주제를 조금은 코믹하게 풀어냈다고 한다면, 이 작품에서의 고립은 처절하고 냉소적인 느낌을 준다.

아내와 자식, 내연녀까지 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던 그는 이 섬에서 한 순간 잡초와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그는 열린 문을 통해 안쪽을 기웃거리며 그의 다리로 손을 뻗는 짓밟힌 풀잎들 사이에서 좌석에 기댔다.

이 강인한 잡초야말로 행동과 생존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존재였다. (pg 73)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잡초. 

그는 잡초와 쓰레기로 가득찬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부상만 늘려가고 체력은 소진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비틀거리는 동안, 메이틀랜드는 육신에 대한, 그리고 염증에 부어오른 다리의 고통에 대한 관심이 흐릿해져감을 깨달았다.

그는 육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중략-

섬을 그 자신이라 여기게 된 그는 폐차 무더기 쪽의 자신의 자동차를, 철조망 울타리를, 

그리고 뒤편에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중략-

그는 자신의 육신을 성체성사에 봉헌하는 성직자처럼 큰 소리로 선언했다. "나는 섬이로다." 

하늘에서 빛살이 드리웠다. (pg 89-90)


책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그 섬에 사실은 원주민이 둘이나 있었고, 이들은 스스로를 섬에 가둔 존재들이어서 메이틀랜드 때문에 외부인이

섬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가면서 그는 기묘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눈앞의 여자를 이 섬을 탈출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로부터, 어린 시절로부터, 아내와 친구들로부터, 그들의 모든 애정과 요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정신이란 텅 빈 도시를 영원히 헤매고 다니기 위해서. (pg 183-184)


그에게 섬이란 것이, 그리고 고립이라는 것이 사실 그가 바라던 바였을지도 모른다.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오는 권태감과 피로감을 떨쳐내고 싶었을수도 있겠다. 

비록 버려진 음식으로 연명하는 삶이지만 온전한 고독감, 

자기 자신마저 더이상 인지되지 않을 정도의 처절한 고독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섬과 자신을 일체화한 그는 결국 다시 혼자 섬에 남겨지게 된다.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도심 속 섬에서의 고립이라는 소재로 어떻게 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230여 페이지로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길게 풀 수 있는 소재라는 생각이 별로 안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SF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작가의 작품답게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보면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겹쳐졌다. 

우리는 서로 부대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최근 한국의 중년 남성들에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열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싶어하면서 자신만의 섬에 틀어박히고도 싶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메이틀랜드 역시 탈출하고 싶지만 탈출하고 싶지 않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무의미한 탈출 시도를 계속하는 메이틀랜드를 보며 되지 않을 시험을 계속 붙들고 있는 장수생 청년들의 모습도 겹쳐보였다. 
어쩌면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 그 목적을 향해 힘쓰는 자신의 모습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작품 자체가 다소 어둡고 처절한 느낌이어서 쉽게 손이 넘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접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드는 걸 보니 역시 거장은 거장인가보다 싶다. 
발전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해주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개인 성향에는 아주 잘 맞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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