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
태린 피셔 지음, 서나연 옮김 / 미래와사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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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외롭지 않으려고 바쁘게 지내고, 사회생활과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에게서 목적의식을 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것들은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다.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기분이 나아진다. 

온 세상이 나와 마찬가지로 허술하고 외롭다. (pg 421-422)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내 서평이 이 작품을 접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미친 스토리를 이렇게 재미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작품을 만났다.


스토리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최대한 스토리 스포를 자제하려고 하는데,

기본 스토리를 안적으면 글 진행이 어려워서 출판사에서 적어둔 정도만 옮긴다. 


상상해보자. 내 남편에게 두 명의 아내가 더 있다고.
난 다른 아내들을 만난 적이 없고,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이 독특한 합의 때문에 남편을 일주일에 단 하루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남편을 너무 사랑하니까. 아니, 남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나 자신을 타이른다.
하지만 어느 날, 빨래를 하다가 남편의 주머니에서 종이를 발견한다. 해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에게 발행된 청구서다. 

해나가 다른 아내라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난 그녀를 추적하고, 거짓으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해나는 내가 누구인지 꿈에도 모른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러 나온 해나의 몸에는 숨길 수 없는 멍이 보인다. 그녀는 남편에게 학대받고 있다. 

물론 그 남편은 내 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리고 남편의 비밀스러운 세 번째 아내는 누구일까?

(출처: 네이버 책 소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657809)


위 책 소개만 봐도 미친 스토리라는 것이 잘 느껴진다.

읽고서 '와이프가 셋이라고? 완전 좋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미혼일 것이다.

결혼 생활을 좀 했다면 느낄 수밖에 없다. 

배우자는 하나로 매우 충분하며 인류가 일부일처제를 택한 것은 위대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여하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내가 셋 있는 남자의 두 번째 아내다.

(주인공의 이름 조차도 스포가 될 것 같아 그냥 주인공이라 쓰기로 했다.)

남편은 매주 목요일에만 만나고 다른 날은 다른 아내들에게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관계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작품 속에서 확인 가능한데, 사실 이 관계의 현실 가능성은 작품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무슨 소린지는 읽어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심경 변화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엄청 상세한 편이다. 

세밀한 심리 묘사 덕분에 내가 저런 상황을 겪어봤을리도 없고, 심지어 여성도 아닌데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엄청 잘 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는 몰려드는 감정의 강도가 너무 쎄서 중간중간 책을 내려놔야 할 정도였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작품의 큰 줄기는 주인공이 다른 아내들의 신상을 알게 되면서 겪는 심리적인 변화이다. 

처음에는 기묘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남편을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독하게 독특한 우리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배우자에게 딸린 것도 함께 해결하는 것이 사랑이다. 내 배우자에게는 다른 여자 둘이 딸려 있다. (pg 51)


쉬 이해가 가진 않지만 누군가를 너무도 사랑하면 그 사람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그녀는 남편을 일주일에 하루라도 차지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다른 아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다른 아내들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질투와 불안감이 그녀를 덮친다. 


이런 심경 변화 덕분에 사건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작품의 마지막까지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도무지 끝을 예상할 수 없는 미궁을 헤쳐가는 듯한 긴장감을 이어간다. 


덕분에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이 읽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외롭지 않으려고 바쁘게 지내고, 사회생활과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에게서 목적의식을 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것들은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다.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기분이 나아진다. 

온 세상이 나와 마찬가지로 허술하고 외롭다. (pg 421-422)


작가가 페미니스트인 것 같은데 스토리에 페미니즘적 시각이 거부감 없이 잘 담겨 있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스라이팅'의 위험성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가스라이팅에 능한 남자에게 이용당하는 주인공의 삶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도 크게는 '인간 관계'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간 관계가 그렇겠지만 사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가깝게 지내는 사이일수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중요해지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배우자는 하나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평생을 살아도 옆에서 잠든 사람의 속도 잘 모르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물론 '절대 바람은 피지 말아야겠다' 정도의 저렴한 감상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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