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잘못이 없다 - 어느 술고래 작가의 술(酒)기로운 금주 생활
마치다 고 지음, 이은정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상깊은 구절

술을 끊었다고 하면 술꾼으로부터 종종 "그러면 인생이 쓸쓸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거? 없다. 왜냐면, 인생이란 원래 쓸쓸한 것이니까. (pg 278)



술...

이름도 징한 애증의 존재.

담배까지는 어찌저찌 잘 끊었는데 이놈의 술은 정말 도무지 못끊겠다.

술 자체를 엄청 좋아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난 오로지 맥주만 좋아한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술 갖다 줘도 맥주 외에는 그닥 입에 맞지 않아서 잘 먹지 않는다. 

퇴근 후 모든 집안일을 끝내고 아이도 잠들고 나면, 모니터 앞에서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하는 맥주는 정말이지...끊을 수가 없다. 


애가 있기 전에는 1주일에 3-4번은 마신 것 같은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그래도 1주일에 1회 정도로 자제하고 있다.

뭐...여기까지만 보면 그 정도면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 1주일, 1회에 맥주를 4,000cc 이상 마신다. 

그 다음 날 숙취를 좀 겪긴 하지만 숙취 때문에 직장에 늦거나 중요한 일을 그르친 경험은 아직은 없다. 


저자 역시 술을 엄청나게 먹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술을 끊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금주 철학을 세상에 내 보인 책이다. 

나 역시도 술을 끊고 싶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이 술을 끊겠다는 다짐으로 읽은 첫 번째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도 속 시원한 비법이나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술을 끊는 방법으로 자신의 '인식 개조'를 말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술을 즐기는 사람은 무언가 힘들거나 행복하지 못한 시간을 일정부분 보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술을 마시게 된다고 말한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나도 그런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적당히 눈치보며 할 일을 하고 때론 진상들을 만나기도 한다. 

집에 오면 모든 기를 다 빨린 아내와 그 기를 다 빨아 먹고도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아이가 나를 반긴다. 

그런 삶이 6일 있으면 1일 정도는 나를 좀 놓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에게는 매일 즐겁게 생활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오늘 하루, 별로 즐겁지 않았다.

 먹고 살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바람에 나를 위한 시간이 단 1초도 없었다. (중략)

 나는 오늘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위한 시간에서 가장 손쉽고 간편하고 효율적인(이라고 생각되는)것이 음주다. (pg 178)


하지만 저자는 술을 끊고 싶다면 이런 보상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런 권리는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pg 178)


저자는 결코 심각한 어조로 우리에게 행복추구권이 있는지 없는지를 진지하게 논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금주를 위해 가볍게, 스스럼없이 자신에게 사고실험을 걸어보는 것 뿐이다. 


이 책에서는 금주를 위해 자기가 자각하는 자기 자신이 평균 이하의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보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원래' 대부분의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삶을 살며, 그런 삶의 대부분은 '원래' 재미가 없다. 

그러니 억지로 재미를 찾기 위해 술을 찾는 짓은 무의미하다 뭐 그런 논리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원래 보잘 것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삶에 술이 끼어들어 봐야 보잘 것과 재미 둘 다 점점 더 없어질 뿐이라고 말이다. 


책이 두껍지도 않고 문장도 마치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힘 빼고 쓰여진 책이라 읽기에 부담도 별로 없었다. 

다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편한 문체가 오히려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지한 느낌이 별로 안든다.)

하지만 책 역시 저자와 독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볼 때, 이 책을 읽고 금주(양이나 빈도를 줄이는 절주라도)라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면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책을 읽고서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 당장에 술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이 재미있었고 술에 대한 마음 속 찬양(?)도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저자는 술을 끊고 나면 이런 저런 장점들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부분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다만 생각해보면 육아도 경험해보기 전에는 아이를 통한 행복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했었으니, 

금주 역시 내가 경험해보고 나면 저자의 말에 더 공감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점차 커가는 아이에게 숙취로 찌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술을 좀 줄여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금주, 단주라는 것은 늘 자신의 제정신과 미친 광기의 싸움이다.

마시고 싶다는 제정신과 마시지 않겠다는 광기가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것이 바로 금주이자 단주다. (pg 40)


닭튀김 한 조각과 맥주 한 잔으로 '엄청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 비해 

맛있는 음식, 좋은 안주, 최상의 포도주를 앞에 두고 '입맛이 없네'라고 투덜대는 사람은 행복을 느끼는 범위가 상당히 좁다.

그런 이유로 절대적인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은 절대적인 행복이 존재한다고 믿고 이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 (pg 146)


(전략) 진정한 즐거움을 한창 즐기고 있을 때 사람은 '지금 얼마나 즐겁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것을 기록하고 증거로 남기려고도 하지 않으니까. 

그런 즐거움은 추구하나고, 또 돈을 지불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온다. (pg 174)


자신을 보통 이하 바보로 여기고 그 결과 자기 인식 개조에 성공하면 술을 끊을 순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얻는 최대의 장점은 사실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pg 198)


인간은 그렇게 못한다.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해서 그냥 마실 수 없으며 위에서 말했듯 상당히 수상쩍은 명분이라도 있어야 마실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술꾼도, 음주광도,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술을 마시지 못한다.

왜냐면 거기엔 그 어떤 대의명분도, 도리도, 큰 뜻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어서 마신다. (pg 228)


술을 끊었다고 하면 술꾼으로부터 종종 "그러면 인생이 쓸쓸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거? 없다. 왜냐면, 인생이란 원래 쓸쓸한 것이니까. (pg 2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