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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블랙독 - 내 안의 우울과 이별하기
매튜 존스톤 지음, 채정호 옮김 / 생각속의집 / 2020년 9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사람들이 수군대며 내 흉을 보는 것 같아 늘 걱정스러웠다.
나는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pg 34)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이제 내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단어가 되고 말았다.
작년에 친동생을 우울증으로 잃고 벌써 1년이 지났다.
이 책을 받아든 것이 그 녀석의 생일 즈음이니, 언제나 그렇듯 책과의 인연도 우연은 없는 모양이다.
얼핏 보기엔 귀여워 보이는 검은색 개 한 마리가 그려진 표지.
처칠이 자신의 우울증 증상을 블랙독으로 표현한 이후 우울증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울증을 앓고 치료한 경험이 있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시각화하여 보여준 책이다.
실제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작가가 큼직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려낸 이미지 옆에 해당 그림을 설명하는 간략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페이지 수도 적고 글자도 적어서 보려고 마음 먹으면 10분이면 볼 책이라 하겠지만,
실제 우울증 환자들이 접한다면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그림들이 한 번 보면 생각할 여운이 남는데, 아래와 같은 그림들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그저 사람들이 대화를 할 뿐인데도 블랙독이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으면 다 내 욕처럼 들리는 현상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g 35)
사람들이 수군대며 내 흉을 보는 것 같아 늘 걱정스러웠다.
나는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pg 34)
실제로 내가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나는 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나를 대충 아는 사람들은 내가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멀쩡하게 지내는 편인데,
집사람도 가끔 '자기는 생각보다 남 눈치를 많이 보는구나' 할 정도로 의식을 많이 한다.
(블랙독이 지켜보고 있는데 타인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림도 있었는데 그것도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큼직큼직한 결정들의 대부분이 진짜 내가 원해서 했던 것이기 보다는
타인들이 내게 갖는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 때가 많았다.
결국 내 행복을 위해서는 이런 기대감에서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길이가 짧은 만큼 책이 주는 메시지도 단순하다.
결국 우울증 극복의 시작은 블랙독이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므로 자신부터 돌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생 일이 있고 난 후 갑자기 불쑥불쑥 찾아오는 우울감 때문에 우울증 관련 책을 나름 좀 찾아봤었다.
자가진단 같은 것들이 제공되는 책도 있어서 진단해보니 나는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아주 전문적인 우울증 서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우울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괜찮은 위로를 전해주는 책이었다.
사실 우울증 환자를 위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게 쉬우면 정신과 의사가 '의사'일리 없다.)
동생 일이 있고서 사람들이 툭 던지는 말로 '평소에 얘기 좀 잘 들어주지 그랬냐'는 소리를 할 때마다 면상에 침을 뱉고 싶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우울증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다.
고민이 있다고 해서 듣다 보면 끊임없는 자책과 세상에 대한 원망 속으로 빠져드는데 이를 위로하려 하면 '니가 뭘 아느냐'고 하고
공감해주다 보면 '역시 나 같은 건 살 필요가 없지' 따위의 말들로 대화가 끝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에게 섣부르게 위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여하간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법 괜찮은 위로가 될 법 하다.
우울증 환자라면 자신이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림으로 형상화 해 봄으로써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책 소개를 위해 검색을 좀 해 보니 이 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2007년이었다.
검색 상으로는 내가 읽은 것이 세 번째 버전인 듯 하다.
내용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이 잘 팔리는 세상이 되었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래는 사족이지만, 만약에 이 책을 보고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라면 아래의 책도 꼭 권해주고 싶다.
나에게는 나름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이었다.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1662867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