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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제작소 - 쇼트 쇼트 퓨처리스틱 노블
오타 다다시 외 지음, 홍성민 옮김 / 스피리투스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노인의 편지를 끝까지 읽은 나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가야 할 방향을 향해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pg 146)
5명의 소설가가 글로벌 기업과 협업해 가까운 미래의 일상을 10개의 짧은 스토리로 풀어낸 책.
이 책을 한 줄로 소개하면 위와 같다.
스토리가 10개나 담겨 있지만 책의 길이는 추천사와 옮긴이 후기까지 합쳐도 180여페이지 정도로 얇은 편이라
처음 책을 받아 들고는 '이 책이 청소년용이었던가' 하는 약간의 당혹감이 들었다.
책을 다 읽은 후 검색을 좀 해보니 책 표지에 적힌 '쇼트 쇼트'라는 문구가 이런 유형의 소설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아래와 같은데, 출판사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쇼트쇼트를 소개한 구절이 있어 옮겨 두었다.
‘쇼트 쇼트’ 는 소설 중에서도 ‘쇼트 쇼트short short story’, 한마디로 ‘짧고 신기한’ 이야기다.
5분이면 읽을 수 있는 단편보다 짧은 형식의 소설을 말한다.
쇼트 쇼트는 1920년대 중반, 미국의 <코스모폴리탄> 잡지사가 처음으로 생각해낸 형식으로 단편보다 짧은 소설을 잡지에 연재해 큰 호평을 받았다. 최근 일본에서 활발히 출간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인상적인 결말이 특징인 쇼트 쇼트의 형식은 ‘이동과 모빌리티’를 테마로 한 이 책의 콘셉트와 잘 어울려 읽는 톡 쏘는 재미를 준다. (출처 : 공명출판사 포스트, http://naver.me/FUwXTrMy)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그런지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최근의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한 모양이다.
위에서 본 정의에 매우 부합하게 책 자체는 정말 금새 읽었다.
읽은 시간만 따지면 1시간이 채 안걸린 느낌이다.
오늘 내 손에 들어왔는데 아이를 재운 뒤에 보기 시작해서 벌써 서평을 쓰고 있다.
물론 한번에 모두 읽었다는 건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는 뜻이다.
책 소개처럼 각기 다른 10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동식 원룸이 보편화 된 사회, AI를 가진 애완견, 거미처럼 생긴 휠체어로 산행에 도전하는 사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자동차,
교통사고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학자, 진짜 돌고래처럼 수영할 수 있는 수트를 만드는 사람 등 정말 SF 영화에서 나올법한
상상력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여기에서는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웨어러블 PC처럼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인공지능 PC가 애완견의 형태를 띄고 있을 때를 상상한 'dogcom.'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애완견의 기능은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지워질 염려 없는 데이터 축적까지 가능한 그야말로 꿈의 PC다.
물론 기계이니 보통의 강아지보다 수명이 길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지보수를 잘 한다 하더라도 복잡한 기능을 가진 기계가 10년, 20년 사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결말은 생략하겠지만, 인류가 어떻게 기계와 인연을 맺고 이를 유지해 나갈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10가지 이야기들이 모두 다 설득력이 있거나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쇼트쇼트'라 불리는 장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장르의 책을 처음 접해서 그런 것일수도, 내가 문학 작품을 많이 접하는 부류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분량이 워낙 적어서 그런지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이 스토리는 정말 좋다'라고 감탄했던 것이 바로 '사막의 기계공'이다.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다니는 것이 아예 사라진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이다.
이동은 도시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파이프로 이루어지며 엘리베이터를 타듯 도착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데려다 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오랜 기간 이런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스스로 걷는 힘을 잃어버렸고, 다시 걷기 위해서는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는 수준에 이른다.
주인공은 어렵게 걸음 보조기를 구해 도시 밖으로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노인의 편지를 끝까지 읽은 나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가야 할 방향을 향해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pg 146)
한 열 페이지 남짓의 아주 짧은 스토리지만 위 구절이 나오기 전까지의 서사가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 작품은 짧은 영상으로 제작되어도 충분한 임팩트가 있겠다 싶다.
짧은 스토리들이 담긴 책이라 그런지 책 자체의 크기도 작고 얇은 편이라 출퇴근길 등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좋을 것 같다.
한 스토리의 길이가 20페이지가 채 안될 정도로 호흡이 길지 않기 때문에 읽는데 부담도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각각의 이야기들에 조금 더 살을 붙여서 보다 긴 호흡으로 읽을 수 있도록 작품화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혹은 설국열차처럼 소재만 차용해 영상화되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장르의 특성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만큼 짧게 읽고 끝내기엔 뭔가 아쉬운 매력적인 소재들이 많았다.
쇼트하게 한 줄로 정리하자면, 재밌었지만 빛나는 상상력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던 아쉬움도 남았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