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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한국에서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이 겪고 나눈 이야기
류승연 지음 / 푸른숲 / 2018년 3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서로 반대편 길로 향하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저들과 내가 사는 세상이 같은 세상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세상은 버스와 달리 안과 밖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저들은 내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고 나는 저들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pg 199)
직장 근처에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와 장애인 직업재활센터가 있다.
그덕에 장애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출퇴근 길에 장애인들과 보호자들을 자주 만난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이곳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내 팔목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당시 나는 20대 후반의 건장한 남성이었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한 지적장애인 학생이 내 옷을 움켜쥐고 있었다.
지금에서 하는 추측이지만, 그 때 내 옷의 재질이 약간 반짝거리는 소재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아는 사람이겠지 싶었던 터라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신호가 바뀌고 옆에 있던 학생의 어머님이 그 상황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손을 치우며 재빨리 사과하셨다.
그때까지도 당황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닙니다' 한마디를 못했고, 그 어머님은 학생을 데리고 길을 건너가 버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위 경험이 3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중증 장애인을 직접적으로 접한 최초의 사례이자 마지막 사례이다.
그 뒤로는 지나가면서 보긴 했어도 직접적인 접촉이나 말을 섞거나 부딪혀본 경험도 전무하다.
그랬기 때문에 그 때 그렇게 당황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생면부지의 남학생이 그랬다면 시비의 의도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아는 사람이었다면 친근함의 표시로 받아들였을텐데
윗 사례는 어떤 의도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당황했었던 모양이다.
난 그때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이렇게 가벼운 질문으로 접하게 된 책이다.
하지만 책을 다 본 지금은 그런 사소한 의문으로 책을 접한 것이 저자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의 장애인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10년 전 쌍둥이를 출산했다.
이란성 쌍둥이였는데 첫째인 딸은 정상이었지만 둘째 아들이 발달장애인 판정을 받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서 저자는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장애 판정을 받고 일반학교를 거쳐 현재 다니고 있는 특수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저자와 가족들이 겪게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아직도 부족하기만한 장애인 복지 제도와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깊은 편견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장애인 복지뿐만 아니라 이 나라 자체가 '복지'라는 단어와 썩 잘 어울리는 나라는 아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인 뉴스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장애인 복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실제 장애인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 입장에서 담당 공무원도 잘 모르는 복지제도를 찾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치고 고된 일인가를 잘 보여줌으로써 무엇이 문제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실 복지제도라는 것은 단기간에 보완되기 어렵다.
최근에 이슈가 되는 아동수당만 보더라도 해당 가정에 10만원이 지급되는 간단한 제도임에도
관련 뉴스 댓글 속 사람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복지의 개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흡한 복지제도 만큼이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이었다.
지적장애 확진을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아들을 대한민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출신 서울대 박사로 키우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다.
자폐 아이를 키운 선배를 통해 유치원 때는 장애 1등급이었는데 엄마의 노력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땐 전교 학생회장까지 한 아이가 주변에 있다는 얘길 듣고 나도 욕심을 부렸다. - 중략 -
장애를 엄마가 노력해서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애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하는 '하나의 특성'임을 알게 되었다. (pg 161)
저자 자신도 발달장애를 '병'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구절이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하기 쉬운 실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장애인을 처음 접했을 때 질문을 하면 흔히 '응, 저 아이는 어디어디가 아파서 그래'라고 답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아파서..."라며 자식을 '아픈 아이'라고 말하는 장애 아이 엄마들이 있다. - 중략 -
나는 '아픈 아이'라는 말에 조용히 반대표를 던진다.
우리 아들은 병에 걸린 게 아니다. 신체가 아픈 것도, 정신이 아픈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 회로가 남들과 같은 속도로 돌아가지 않을 뿐이다. (pg 163)
장애인을 환자 취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는 사람과 다리가 절단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똑같이 '아픈' 사람이라고 정의하게 되면
장애인도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런 편견 외에도 저자가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인식 개선 포인트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적당한 무관심'이다.
'아니, 장애인 현실이 개선되려면 관심이 많아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관심이란 개인적인 관심을 의미한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공공장소에서도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상하게 여길만한 언행을 보이곤 한다. (떼를 쓰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이러한 행동의 경우 특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멈추게 된다고 한다.
이 때 사람들이 적당히 무관심하게만 기다려줘도 해당 장애인과 가족에게는 큰 도움이 된단다.
자신도 모르게 쳐다보며 무언의 비난을 쏟아붓지 말아달라는 당부였다.
이렇게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이지만, 일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도 많았다.
특히 정상인 딸 아이가 자신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라는 말을 했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형제, 자매 중 어느 하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아이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상대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정상인 아이가 무턱대고 투정을 부리기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자라고 나서의 인성에 문제가 될 소지도 생기게 된다고 한다.
우리 집은 나이 차이가 4살이 나는 형제 집안인데, 특이하게 동생과 나 모두가 편애로 인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가 둘 이상이면 아무리 공평하게 대하려 해도 순간순간 누군가는 아쉬울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쌓여 서른을 넘긴 지금도 부모님 앞에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부모 노릇이 쉽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는다.
하물며 한 쪽이 장애를 가진 경우니 오죽 했겠는가.
또한 사고없이 평균적인 삶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죽게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보통의 부모라면 자식이 자신보다 오래 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테지만, 자식이 장애를 가진 경우라면 이것이 두려울 법 하다.
그래서 저자도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 자식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물려주고 싶었단다.
결국 이전까지 세웠던 모든 계획이 엄마인 나의 욕심이고 허영일 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내 생각대로 아이의 인생을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내가 계획한 대로 아기가 따라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모든 자식 된 자의 본성이다. (pg 260)
윗 구절을 읽고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도 자랄 때 부모 뜻대로 자라주지 않지 않았던가.
비단 장애아이를 둔 부모 뿐만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부모라면 무언가 와닿는 게 있을 구절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눈을 감고 현실을 피하고 싶어도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지금도 늘 함께 살고 있다.
언젠가 마트에서, 공원에서, 지하철에서 딸과 함께 장애인을 만난다면 나는 어떻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처럼 무심하게 '아, 어디어디가 아파서 그런가봐'라는 말로 얼버무리지는 않으리라.
지금 다시 그 횡단보도로 돌아간다면 난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옷이 맘에 들어요? 저도 큰 맘 먹고 샀어요. 하하하' 하고 웃으며 넘어갈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까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머님이 죄송하다고 했을 때 '그럴 수도 있지요 뭐'하며 덜 무안하게 해 드릴 수 있지는 않았을까.
저자가 기자 출신이라는 것이 책 전체에 걸쳐 잘 드러난다.
읽으면서 '야...이 사람 글 참 잘쓴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300페이지 정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분량이지만 쉽게 술술 읽힌다.
게다가 그 안에 가끔은 가슴 찡한 슬픔이, 가끔은 유쾌한 유머가 묻어 나온다.
주변에 장애인과 장애인의 가족이 있든 없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자녀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면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서평에 다 담지 못한 인상깊은 구절을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서로 반대편 길로 향하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저들과 내가 사는 세상이 같은 세상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세상은 버스와 달리 안과 밖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저들은 내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고 나는 저들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pg 199)
내 아이는 인간적 가치 면에서 효율성이 낮아 '맞아도 어쩔 수 없는 장애인'이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 있는 존재다.
나는 살면서 그 누구도 변화시켜본 경험이 없지만 내 아들은 이미 나를 변화시켰다.
어쩌면 아빠와 누나도 변화시킬 것이다. 존재 그 자체로 말이다.
내 아들을 비롯한 발달장애인의 인권이 나와 동등한 개인으로서 지켜져야 하는 이유다. (pg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