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뜬소문으로 이 책의 판권 가격이 상당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상당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 기대에는 못 미치지 않나 싶다. 우선 이 책을 보고 나서 느낀 것은 에쿠니 가오리의 마미야 형제의 두남자라는 설정과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의 칠드런과 닮았다 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뭐 그건 순전히 내가 느낀 것이고 일본의 아쿠타카와상과 더불어 가장 인정해주는 나오키상 수상작인데 뭔 문제가 있겠나? 단지 일본문학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런 흐름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다.
난 다다와 교텐처럼 느긋느긋한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교텐은 정말이지 최고의 느긋느긋한 사람이다. 말하기 귀찮아서 고등학교 내내 말 안하고, 초등학교 용돈으로 버티는 교텐이라는 인물은 정말이지 느긋느긋하다. 이런 느긋느긋한 두 사람이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아주 전형적인 일본소설이다.
이 소설에 있는 에피소드 중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유라가 나오는 에피소드였다. 유라는 일본이라는 한 나라로 극한 시킬 거 없이 아이 낳기를 꺼려해 아이를 안 낳거나 아니면 하나만 낳거나 하는 현재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에 나와 있는 것처럼 중국아이들에게, 굳이 국외로 나가지 않아도 식당에서 함부로 떠들어도 혼내지 않는 우리나라 가족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버릇없는 아이가 상당히 있다. 하지만 여기 이 책에서의 유라 처럼 버릇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린아이의 근본은 어디가지 않는다.  다다와 교텐 처럼 누군가에게 교화를 받아서 유라의 성격은 점점 변화해 가지 않았는가?? 부모가 안 된다면 제 3자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일본어도 잘 모르는 내가 번역자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에피소드 14페이지에 있는 주인이라는 말. 다다는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여자는 질색이었다. 라고 쓰여져 있는데,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것을 보고 오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이 한자그대로 주인이라고 해석했을 경우 역주로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름이라는 말을 써놓아야 했다. 물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주인이라는 말을 잘 안쓰 긴 하지만 일본  쇼프로를 봐도, 아주 표준어식 말을 쓰는 여성분들, 굳이 말하자면 세간에 교양있고 귀품있다고 알려지는 여성들은 대부분 남편을 가리킬 때 주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드라마를 보면 주인이라는 말은 많이 나온다. 이 것이 안 쓰여져 있는 것이 나에게 한 가지 아쉬움이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들었는데.”
교텐이 말했다.
“그건 추락한 적 없는 인간들이나 하는 허울 좋은 말이야. 너도 알지 않냐?”
“글쎄다....”
교텐은 조금 피우다 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눈을 감았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부분이 나에게 인상 깊은 것은 왜일까? 아직 사회경험이 없는 나에게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 항상 가장 잘난 듯이 보이는 사람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할 때 위선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와닿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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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견 - 5,000년의 사랑 이야기
이수현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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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내가 멋대로 착각한거지만 폼페이 재앙 이후에 발견된 사체 로부터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폼페이의 최후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책을 고른 것이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훨씬 옛날인 5000년 크로마뇽인의 시체였다. 앞으로 책 소개 글을 꼭 자세히 읽어보고 책을 골라야 겠다.

첫 단추부터 안 맞은 이 책에게는 여러 가지 불평사항이 많다. 그 첫 번째는 시점의 혼동이다. 작가의 소개 글을 보면 국문과를 나오신 걸 로 되어 있는데 어찌 안 나오신 작가 분보다 별로이신 것 같다. 난 처음에 3인칭 관찰자 시점 특히 릴라를 중심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전지적 작가시점이 나왔다가 릴라도 아닌 루가로 되었다가, 시점이 혼란스럽다. 좀더 정돈되게 글이 쓰여져 있다면 독자도 편할텐데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너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놓은 것 같다. 남성을 대표한다고 할수 있는 바위종족사람들은 씻는 것을 싫어하고 무조건 화부터 내는 성격으로 나온다. 그리고 여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물가족은 무엇인지 의논하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꽃을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설정이 고대이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의 분류가 우화소설에 들어가는 만큼 현대인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성격이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맞쳐 주면서 사랑을 발견한다는 작가의 의견에는 나도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성을 분리 시켜놓는 것을 전제 하에서 하다니. 너무나도 아쉽다. 남자의 성격과 여자의 성격을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성(gender)일 뿐이다. 남자인데도 우리 친오빠는 씻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인데도 우리 아버지는 화부터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어머니보다 인자하시고 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신다. 여자인데도 나는 꽃 같은 것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오히려 이 책의 루가처럼 먹을 것이 더 좋다. 또한 여자인데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든지 의논하는 활발한 사교성보다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책을 읽는다던지 컴퓨터를 한다던지 이런 것을 더 좋아한다. 이 소설은 사랑의 발견이라는 것을 도출해나가기 위한 과정을 고대의 크로마뇽인 커풀을 통해 현대인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의 중성화( 이 말도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나 성역할의 바꿈이 반영되지 않은 책의 아쉬움을 클 수 밖 에 없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에필로그에서였다. ‘아들 하나는 병으로 잃었고, 딸 하나는 승냥이에게 물려갔다. 또 다른 아들 하나는 사냥 길에서 성난 들소에게 밞혀 죽었다. 하지만 루가와 릴라는 슬퍼하지 않았다. 사랑만 하기에도 삶은 짦았 으니까’  뭔 소리란 말인가! 자식이 죽었는데도 슬퍼하지 않다니. 사랑만 하기에도 삶이 짧아서 슬퍼하지 않다니. 나의 정서상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실망을 안겨 준 책 이다. 우화소설을 다시 볼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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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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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태까지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을 네 가지 읽었다. 암보스문도스, 아임소리마마, 아웃, 잔학기 순으로, 이것을 다시 재미 순으로 나열하라면 나는 암보스문도스, 잔학기, 아임소리마마, 아웃 순으로 하겠다. 지금부터 내가 관여할 책은 그 두 번째인 잔학기이다.
맨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느낌은 암보스문도스의 비슷하지 않나?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니 처음만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책장을 덮으면서 무언가 뒤에 남는 찝찝함도 비슷했다. 난 왜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만족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우선 첫 번째는 암보스문도스를 읽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암보스문도스의 단편은 작가가 등장인물이거나 아니면 작가의 주변인물일 수 있는 편집자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이 책 또한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가 써낸 소설 속에 작가가 써낸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암보스문도스 에서도 느꼈듯이 작가라는 사람에 의해 한번에 여과된 것이 아닌 이중의 작가가 두 번에 의해서 여과되어서 비슷한 느낌을 가지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암보스문도스의 맨 마지막 단편 암보스문도스이다. 암보스문도스의 주요 인물은 불륜을 저지른 두 교사이다. 간통이란 우리나라에서는 죄가 되지만 일본에서는 간통은 법정에서 다루게 되지 않게 되었다. 즉 일본에서는 도덕적인 것에 위반되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다뤄져서 처분을 받는 것이다. 두 나라간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 즉 한쪽에서 볼 때는 범죄가 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 볼 때는 범죄는 아니지만 도덕적인 면에서 위배되는 것이 이 잔학기와 닮았다.
잔학기 에서의 겐지는 누가 뭐래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의 본편에서도 잠깐 나오지만 나루미는 겐지와 밤에는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고 마지막 미야사카가 덧붙인 말을 보았을 때 나루미와 겐지는 사랑하는 관계였다. 즉 외부사람이 보았을 때, 그리고 결과가 만들어지도록 만든 원인은 범죄이지만 나루미와 겐지 당사자들만이 외부적인 것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 이들의 사랑은 범죄가 되지 않고 단순히 도덕적으로 위배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두 작품 다 보는 사람들, 알지 모르고 보면 다른 이중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성적인 사람이다. 잔학기의 본편에서도 나루미는 성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을 몇 번 쓴다. 이것이 너무 확장했을 수 도 있지만 암보스문도스의 사랑의 섬에 나오코와 쓰루코를도 이 성적인 사람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마음속에 있는 성적인 욕구를 쏟아버리고 싶은 사람 그 사람들이 성적인 사람이고 나오코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쓰루코는 노예생활을 통해 그리고 나루키는 밤의 꿈을 자신의 글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닌 가 싶다.
지금까지가 내가 느낀 암보스문도스와 잔학기의 분모였다. 작가는 또 다른 작품에 분모를 아래에 놓고 분자를 계속 만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것이 좋다. 종합해서 느껴보면 비슷하지만 또 분리시켜보면 전혀 색다른 맛을 내는 글을 쓰는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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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계약 1 뫼비우스 서재
할런 코벤 지음, 김민혜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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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추리소설은 오랜만이었다. 아마 중학교 때 본 울트라 이fork 아닐까 싶다. 추리 소설 좋아하는 내가 미국 추리소설을 안 본 이유를 꼽는다면 우선 문화의 이질감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일본 영상부터 시작해 온갖 매체를 접하는 덕에 어느 정도 일본문화에는 익숙하여 일본 추리소설을 볼 때 일본문화가 어느 정도 다르다는 것은 느끼지만 그래도 책 속에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추리소설은 아직 멀다. 요즘 그렇게 열풍을 불고 있는 미드도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어서 이 추리소설을 읽는데 상당히 애먹었다.

어느 정도 그 나라의 문화의 배경을 알아야 소설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유머의 경우 말이다. 하지만 난 미국 문화를 잘 모르는 덕에 이 책에 유머를 50%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내가 50%밖에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위트 있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것이 판명이 난다.

하지만 작가에게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작가는 1권부터 2권까지 계속 어떤 상황이나 아니면 어떤 사물을 묘사할 때 TV의 시트콤, 드라마, 쇼의 비유에서 말한다.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됨을 볼 때 이 작가의 문장력이 속된말로 좀 딸리지 않나? 라는 생각을 안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사람이 말을 할 때가 아닌 작가가 어떤 것들을 묘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글로 풀어 쓰지를 않고 ‘롱키스드 야드’ 같다는 등 뭐 같다는 둥 계속 나타내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국문화를 모르고 미드를 모르는 나는 당연히 이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안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국 원어민도 잘 모를 것 같다. 작가가 예로 드는 것들이 역자의 설명을 보아하면 다 60~80년대의 방송들이니 일일이 찾아서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 어찌 알겠는가. 작가는 어떤 프로그램 같았다는 인쇄 매체에 맞지 않는 글 대신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자신이 아니면 이 인물이 받았을 느낌을 글로 표현했어야 옳았다. 년도수를 보니 아직 핸드폰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95년도 작품이니 최근에 낸 작품에서는 이런 부분이 계선됐으리라 믿는다. 어떤 사람은 추리소설에서 너무 유난 떤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재미는 흡입력에 있다. 이런 좋지 못한 묘사가 얼마든지 흡입력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그 장본인이다. 충분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것 때문에 흡입력에 방해가 되면 아쉽지 않겠는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낀 것 같지만. 좀 걸리는 비밀이 있을 때 남자친구와 같은 이성에게 전부를 털어놓아서는 안 된 다는 것이다. 정말 테스 이래로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서 많이 느꼈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나에게 이 말을 해준다. “숨길 수 있는 최대한 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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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 - 오프라 윈프리의 일과 성공과 사랑
로빈 웨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집사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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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가 흑인여자이고 방송인이고 부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의 어린 시절은 고등학교 시절 짤막한 영어지문으로 몇 번 본적이 있어서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오프라 윈프리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기에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리고 우리나라에 그녀의 방송이 수입되느냐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집-학교의 생활을 즐기는 외톨이형인 나와 미인대회에 나가고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방송활동도 활발히 하는 오프라 윈프리는 확실히 비교가 된다. 이런 적극성이 지금의 오프라 윈프리를 있게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책 제목을 보아라. ‘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 이다. 모름지기 책 제목이란 책 내용이란 연결되어야 하는 법. 제목의 주체는 나이다. 아무리 오프라 윈프리의 자서전이 아니고 잡지 칼럼니스트가 쓴 위인전 성격의 책일지라도 주체는 나이므로  오프라 윈프리 자신의 이 제목에 관련된 코멘트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뒤에 방송대담을 붙여주는 좋지 못한 센스 대신 말이다. 
오프라 윈프리 자신의 코멘트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오프라 윈프리의 관여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고, 어느 정도 이 책을 쓰는데 있어서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작가의 논조는 내리 오프라 윈프리의 찬양조이다. 어디 하나 비판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인터넷 뒤지면 알 수 있는 오프라 윈프리의 에피소드의 구구절절 찬양조. 정말이지 정 안가는 책이다.
그래도 세계적 저명인사에 관련된 책이어서 초판 1쇄 발행한지 10일 만에 3쇄까지 찍었다. 3쇄까지 발행하면은 다시 한번 책 수정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134페이지에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1977년에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있다. 이거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테레사 수녀님은 내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셔서 성당에서 기도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1977년에 태어나셨다니! 이 책이 1쇄였으면 이정도의 실수는 애교로 넘어가지만 이 책은 3쇄라는 사실이다. 교정하실 때 좀더 자세히 보시기를! 1977년과 1997년이 헷갈리긴 하지만 말이다.
주구장창 이 책에 대한 비평만 해대었는데 솔직히 그렇다. 이 책에 좋은 점이라고는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과 그리고 책 광고에 오프라 윈프리가 추천한 책! 이라고 쓰여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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