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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 - 윤상원 vs 전두환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9
이계형 지음, 남기영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1월
평점 :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1980년 5월에 광주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 운동은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차지한 신군부 세력과
그들이 내린 계엄령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했던 역사적인 사건이었죠.
하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엔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는 줄도 모르고 살았잖아요.
몇년 전에 영화 <택시 운전사>를 통해서 5·18 민주화 운동을 보며
가슴이 어찌나 먹먹했는지 모른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자음과 모음 역사공화국은
역사를 법정에 세운다는 참신한 스토리텔링으로
기본적인 지식뿐 아니라 균형 있는 관점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요
법정 드라마 형식을 통해 주장과 논거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유연성을 기를 수 있어 아이들이 토론과 논술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책이죠.
일반적인 역사책과는 다르게 전개되서
좀더 재미있고 기억하기도 좋은것 같아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시리즈 <왜 5·18 민주화 운동은 왜 일어났을까?>는
원고와 피고가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벌이는 법정식 구성을 통해
무장한 공수부대의 폭행과 탄압에도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끝까지 싸운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가 어릴적엔 뉴스에서 대학생들이 최루탄 던지면서 시위하는걸 보고
뉴스에서도 늘 부정적이게 말을 해서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생이 되었는데 왜 공부는 안하고 매일 시위만 하는지 이해를 못했더랬어요.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되었던 어린 아이였으니 알 수가 없었겠죠.
하지만 그것이 이유있는 항쟁이었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었기에
저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을것 같은데요
우리 아이들은 처음부터 역사를 바로 배울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는
신군부가 어떻게 국가 권력을 장악했으며,
민주화 운동과 최후 항쟁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
재판 첫째 날부터 셋째 날로 나뉘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연계내용도 소개되어 있고,
한국사와 세계사 연표를 함께 보니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있었네요.
맞아요..그때 그런 일이 있었죠.
또, 우리나라에서 서울 아시아 경기 대회가 열리던 해에
필리핀에서 민주 혁명이 있었고요.
이렇게 연대를 함께 보니까 더 많은 역사를 알 수 있어서 유용하네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주요 등장인물들 확인은 필수겠죠.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수백 명의 희생자들이
30여 년 세월 동안 구천을 떠돌다가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 연합회'를 조직하여
영혼 재판을 열기로 했답니다.
원고는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 연합회,
대리인으로 명석한 변호사,
피고는 전두환, 대리인으로 모호한 변호사가 재판에 참석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국민들은 19년간의 독재가 끝나고
'서울의 봄'이 올거라고 기대했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의 수사를 총지휘하던 전두환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자기의 상관이었던 정승화 참모 총장을 체포하고
공수 부대, 9사단, 30사단의 군인들과 제2기갑 여단의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중앙청과 청와대 입구에 배치하고 국방부와 육군 본부를 장악했어요.

12·12 사태를 꾀한 피고와 신군부는 정권 탈취에 자신감을 가지고
피고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K-공작'을 추진했는데요
보안사령관인 피고가 중앙정보부장까지 꿰차면서
부총리급 국무 위원으로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었어요.
1980년 5월 초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불붙기 시작했고,
5월 14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지역 22개 대학 5만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종로 광화문, 영등포역 광장 등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5월 15일에는 서울과 지방 35개 대학생 10여 만명이 서울역에 모여
"전두환은 퇴진하라!", '비상계엄령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18년간 군부 독재 아래 억눌려 왔던 민중의 민주화 열망이 폭발하자
특전사 6개 여단과 20사단 3개 연대를 출동시켜
학생들은 '서울역 회군'을 하게 됩니다.

피고는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시키고 국회를 해산하며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내각을 통제, 조정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국민연합 공동 의장 김대중, 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 등 정치인 26명을 연행하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가택 연금 시켜 피고가 집권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정치인들을 제거하려고 했죠.
1980년 5월 18일 0시 40분 계엄 포고령 제 10호를 공포한 뒤
수도 군단 예하 33사단 101연대를 투입하여 국회를 점거하고,
5월 20일 국회의원들의 등원을 막아 임시 국회를 원천봉쇄했답니다.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학생들이 정문에서 집결하자
공수 부대원들은 학생들을 철심이 박힌 곤봉으로 내리치고 군홧발로 차는 등 과잉진압을 하는 상황에도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광주역을 거쳐 금날로 쪽으로 몰려가면서 구호를 외쳤고,
공수 부대원들은 시위를 지켜보던 신혼부부, 노약자, 부녀자들에게까지 폭행을 휘둘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각 장애인 김경철 씨가 진압봉에 맞아 죽는 일도 발생했고요.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광주는 공수 부대원들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시민들로 넘쳐나 택시 기사들은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공수 부대원들이 운전기사를 끌어내고 배를 찔러 죽인 사건이 발생했어요.
당시 세 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다니 그런일도 다 있었군요.
또, 그 일로 시위대가 경찰과 공수 부대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
대한통운 소속 12톤 트럭과 고속버스, 시외버스, 영업용 택시 200여대가 동참했는데
물러서지 않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공수 부대는 총을 쏘았고,
동료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시위대가 물러서지 않았다니..
오늘날의 민주화는 이렇게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어서 주어진 것이었네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수 부대를 철수시킨다고 해놓고 철수 하기는 커녕,
5월 21일 시위대에 일제히 사격을 했다는 겁니다.
이때 임신 8개월 여성을 포함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일어났지요,.
그럼 누가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해도 좋다고 지시했을까요?
공수 부대의 발포로 시위가 격화된 상황을 보고 받은
전두환과 노태우 수도 경비 사령관 등 이른바 신군부 핵심들이
협의하여 자위권 발동을 허용한 것이죠,

5월 21일 저녁 8시경 공수 부대는 퇴각했고,
공수 부대를 몰아냈다는 승리감에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했지만
광주는 외부와의 통신과 교통이 완전히 끊겨 생활필수품이 공급되지 않는
그야말로 고립된 상태였던 겁니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사재기를 하거나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상황을 힘을 모아 슬기롭게 헤쳐나갔지요.
부상자들의 피가 부족하여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하기 위해 병원에 줄을 서기도 했고,
헌혈을 하고 나오던 전남 여상 3학년 박금희 양은
철수하던 시위대가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광주에서 채소를 팔고 진도 집으로 귀가하려던 부부를 통과시켜 주지 않고,
되돌아가는 트럭에 총을 쏴서 다섯 살짜리가 총상을 입어 하반신 불구가 되었으며,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던 어린이들에게 총을 쐬서 두 명이나 사망했다니
이게 인간이 할 짓 인가요!!!
5월 26일 밤, 도청에는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예비군, 청년과 학생,
심지어 여학생도 10여 명이나 있었는데요
5월 27일 새벽 4시경, 정전이 되면서 공수 부대 장갑차에 설치된 서치라이트가 도청 건물을 비추었고,
결국 총격전이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렀어요.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에 내려왔지만 광주 시내를 둘러보지도 않았고
잠시 머물다 갔기 때문에 대통령이 광주를 다녀간 사실을
광주 시민들은 그날 저녁 KBS 9시 뉴스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을 보고 알았다네요.
10일 만에 5·18 민주화 운동이 끝났고, 피고 전두환은 이들을 물리친 위인으로 포장되었으며
그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의 모든 죄악은 감춰져 버려 진실이 묻히고 말았던 겁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이 크나큰 민주화 운동을 모르고 살았던 거겠죠.

저는 책의 내용을 간추려서 적어봤는데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는 피고, 판사, 변호인, 증인 등의 입장에서 발언을 하는 형식이라
좀더 실감나게 그때의 상황을 알 수 있더라고요.

각 재판마다 '교과서에는'과 꼭 알아야 할 '역사 용어 팁 정리' 코너를 구성해
역사적 내용이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어떻게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고,
'열려라, 지식 창고'를 통해 1960년대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과
역사적 사건에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수록해
폭넓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답니다

울 썬양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를 읽는 내내 표정이 안좋아요.
아직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옳고 그른건 판한할 수 있는 나이기에 그런거겠죠?
어떻게 같은 나라 국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총을 쏠 수 있는지,
지금이라면 일어날 수도 없는 일들이 그 시절에 일어나
많은 광주 시민들에게 슬픔을 안겨준 사람들이 원망스럽다고 하네요.
또, 나중에라도 역사적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이고
다시는 그런 가슴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요즘 민주주의에 대해서 배우고는 있지만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는데
책을 통해 왜곡된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겠다고 하네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 과정을,
또 광주 시민들이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
짧게 정리를 했더라고요~
빨갛게 밑줄친 부분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 꼭 기억해야 한다며~~
무장한 공수부대의 폭행과 탄압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운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
더 자세한 내용은 책으로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라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
서평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