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열심히 하는 게 어때서 황상민의 성격상담소 5
황상민 지음 / 심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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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Paul Gauguin)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다. 그의 작품 중 눈 여겨 볼만한 작품을 고른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리라. 모든 작품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작품을 꼽으라면 1897년 작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들 수 있다. 고갱이 이 작품을 그린 시기는 극심한 생활고와 건강 악화가 있었던 때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시기에 고갱의 딸이 숨을 거두었다. 남겨진 우리에게 대작이자 명작이 있는 이유는 그의 깊은 고통 덕분이다. 물론 고갱 자신도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 작품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의 오른쪽 끝에는 갓난 아기가 있으며 왼쪽 끝에는 백발의 노인이 위치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여정을 기다란 화폭에 담아 놓았다. 이 작품의 길이가 4m(375cm)에 가깝다는 걸 감안한다면(고갱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감상하는 사람이 천천히 걸어가며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이다. 갓난 아기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있어서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보통 아기라면 웃는 표정이라든지 우는 표정을 표현하기 마련인데 죽은 듯 무표정하다. 백발의 노인은 구겨진 듯 앉아있고 무엇인가 괴로워하며 머리를 감싸고 있다.


그림으로만 보자면 태어나는 생명은 기쁜 일이 아니며 죽음이 다가오는 건 괴로운 일일 뿐이다. 고달프고 슬픔에 젖은 고갱 자신의 삶이 그림에 깊게 배어 있다. 감상하는 사람이 고갱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의 아픔은 감상자에게 미미하게나마 흘러 간다. 고갱의 인생과 작품을 보면 그는 평생 자신을 깊게 돌아보며 살았던 거 같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성찰을 더 이상 자신에게 국한하는 게 아니라 우리모두에게 돌리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말이다.


고갱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자기를 성찰하는 대신 자신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대학 소속인 자신, 조직의 한 부분인 자신, 갑이나 을의 위치인 자신, 직업이 무엇인 자신. 우리는 그것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할 때가 많지만 정작 순수한 자기 자신은 없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이 무색하게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잊어가며 잃어버린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기에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힘들고 지친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위로와 격려를 말하는 책들과 미디어들이 많아진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힘내라고 말한다. 분명히 힘과 위로가 되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황상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그가 개발한 성격유형검사인 WPI(Whang’s Personality Inventory)의 다섯 가지 유형 중 에이전트에 대해 소개한다. 실제 상담의 예를 들며 대화하듯 술술 이야기한다. 각각의 예들은 모두 다르지만 중심을 흐르는 맥은 자기 찾기. 그래서 읽는 동안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정직하게 서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찾고 인정하는 과정은 더 나아가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자신이 아닌 순수한 자신을 찾는 것은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실존적인 문제다.


다시 고갱의 작품으로 돌아가보자. 작품의 제목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흔히 우리가 아는 제목과 비교하여 단어 하나가 다르다. 바로 누구인가무엇인가로 바뀐다. 자기를 알지 못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갱은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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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종교개혁사 - 종교개혁의 정점, 웨스트민스터 총회 편
황희상 지음 / 흑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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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필자의 학교엔 수재같은 수학선생님이 계셨다. 소문에 의하면 학창시절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고 당당히 S대학교 수학과를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신 교사였다. 이과였던 필자에겐 수학이 중요했다. 하지만 필자는 그분의 수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은 언제나 자신의 수준(?)에서 가르치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내가 대표적이다-을 순수한 눈망울로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쉬운 걸 왜 모르니?"


 그 때가 미분을 처음 배울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필자 자신이? 아니다. 그 선생님이 안타깝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로 되어 있는 자가 가르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특강 종교개혁사>(이하 '특종이')는 위와 같은 경험을 한 필자에게 그 때를 회상하게 해주었다. 그 시절 그 선생님이 학생을 위해 수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특종이는 그랬다. 특종이는 나를 위한 책이고, 독자를 위한 책이며, 교회를 위한 책이다.


 루터의 저작은 독일문학을 빛나게 했으며 칼빈의 저작들 또한 프랑스산문 분야에서 빛을 발했다. 그렇다. 종교개혁의 대표적인 두 인물은 그 귀한 기독교의 유산을 잘 정리한 아름다운 자신들의 모국어를 통해 쉽게 전달할 줄 알았으며 그렇게 했다.


 필자가 처음 신학에 관심을 갖고 '평신도'(이런 단어 쓰면 본서의 저자에게 혼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겠다.)로서 이런저런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한 그 때, 필자는 필자가 정말 한글을 못하는 줄 알았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을 읽어도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는 경험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 신학이라는 건...어려운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일단 내용은 차치하고 한글 문장 자체가 이상했다. 번역서가 소위 번역체로 쓰인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번역서가 아닌데 번역체로 쓰인 건 이해하기 어렵다. 특종이는 그렇지 않다. 일단 특종이의 문장은 짧다(물론 말은 짧지 않다). 당연히 한글답다. 그래서 쑥쑥 들어온다. 어려운 단어도 많지 않다. 간혹 나오게 되면 어김없이 설명이 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본서를 읽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 증명은 끝난 거다. “특종이는 짧은 한글 문장으로 쉽게 쓰였음.”


 특종이가 다루는 주제는 역사이다. 본 글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학창시절 역사를 어떻게 공부했는지, 역사에 대한 인상이 어떤 지 살짝 떠올려보라. 필자는 역사가(수학에 이어..역사도…) 재미없었다. 외울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가 재미있어서 보고 또 보고 계속 봐서 외워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외우기 시작해서 재미없었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데 도대체 왜 알아야 하는지 모르고, 그렇게 필자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다음과 같은 문구는 누구나 알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하지만 역사가 정말 대화인지 느끼며 공부했던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특종이는 이 부분에서 대화를 건넨다. 지금 내가 서있는 신앙의 자리가 어디인지, 이 자리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생겨났는지 역사 속에서 다룬다. 그리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이게 대화이다. 이게 역사 공부의 참 의미이다. 신기한 건 년도나 인물의 이름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대충 외워진다는 것. 세번 읽으면 아예 외워질 거 같다(‘라 로셀이라니필자가 여기가 어디인지 관심이나 있었던가! 근데 라 로셀이 친근하다.).


세상엔 엄밀하며 고도의 학문성을 요구하는 소수의 책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소수를 위한 책이다.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수많은 성도들에게 1차적인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종이는 엄밀하지도 않고 학문적이지도 않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특종이를 잠시라도 보라. 그 속에 담긴 방대한 자료. 그런 자료를 맛나는 요리로, 때론 가보고 싶은 길로 만들어내는 저자의 능력은 참으로 탐난다(직업적 욕심이다. 어쩔 수 없다. 갖고 싶…). 이게 필요하다. 수많은 자료와 이미 편만한 어려운 단어들은 누구나 수집할 수 있고 누구나 소개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수집하고 나열하며 소개하느냐가 관건이다. 솔직히 책을 보면 저자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소위 어려운 단어어려운 내용들이 보이는 듯하다. 그만큼 독자와 교회를 위해 잘 다듬은 책이라는 말이다.


다른 서평들이 본서의 내용을 다뤘겠거니 싶어서 필자는 그 내용을 전달하는 저자의 도구에 집중했다. 기독교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 즉 전달할 내용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국정 교과서 만드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는데내용이 정해져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소식인가!). 그래서 참 안전하다. 하지만 안전함에 눌러앉아버린다면 더욱 위험하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고립된 안전함. 우린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진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개발해야 한다.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도, 교회도 안전함 가운데 머물 수 있지 않은가. 특종이와 같이 진리를 전달하는데 탁월한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말 간절하다. 그래서 본서를 읽기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이제 본 글을 읽는 당신은 결제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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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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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만화책.

상당히 괜찮은 가격에 세트가 나왔다.

물론 우리학교 고등학생들에게는 
이미 필독서 목록에 올라가 있다.

근거도 없는 허황된 자기 최면 속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환상의 '힐링'의 환각제를 맞기보다...

어둡고 차갑지만 
현실의 모습을 정확히 간파하는 것이 
이 시대 아니,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요소이다.

이런 멋진 만화책을 봤나..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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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의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1
존 파이퍼 지음, 주지현 옮김 / 좋은씨앗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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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주변 그리스도인들과 도움이 되었던 책들을 통해 66권의 성경의 책들 중 가장 멋지다고(물론 무엇을 멋있다고 꼽을 수 있느냐마는) 수없이 들었던 책이 로마서이다. 하지만 무지한 필자에게는 성경만 가져다 놓고 읽는 것으론 그 깊은 뜻을 알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때 , 성경은 이렇게 읽는 건가보다라고 느끼게 해줬던 책이 로이드 존스목사의 로마서 강해 3’(CLC)이었다. 당시 3권을 시작으로 6권까지, 마치 배고픈 걸인이 밥을 먹듯 행복해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후로 강해서에서 강해되었던 구절이 나오면 당시의 감동이 살아나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번에 읽은 복음과 하나님의 의’(좋은씨앗)의 저자인 존 파이퍼목사 또한 로이드 존스목사의 로마서 강해를 읽게끔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그런 저자가 로마서 강해서를 썼다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얼마 전 회자되었던 NPP(바울의 새관점)에 대한 토론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니 그가 설교했던 로마서의 내용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저자는 NPP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진 않는다. 하지만 전통적 이신칭의의 진리를 전반적인 강해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강해의 초반에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공간의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기초하며 시작한다. 성경의 권위가 무너진 현시대를 돌아본다면 참으로 위로가 되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평소 저자가 많이 인용했던 인물들의 향기가 난다. 조나단 에드워즈목사의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기쁨에 대한 향기가. 로이드존스목사의 현미경과 같은 강해의 향기가 있다. 하지만 경건한 선배들의 향기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역사를 살았던 선배들과 같이 저자가 존재하는 역사 안에서 외치는 현장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외침으로 다가온다. 본서를 통해, 비록 로마서 전체의 강해가 이뤄진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본서는 로마서 320절까지의 강해이다.) 필자로 하여금 로마서를 달달 외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할 만큼, 그의 강해는 하나님의 말씀의 달콤함을 맛보게 해준다. ……본인은 언제 이렇게 성경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 달콤함은 그리스도이시다. 저자는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일과 그리스도의 영광과 달콤함을 보여준다. 로마서에 나타나있지 않은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로마서가 영혼들에게 전하려 하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그리스도가 바로 구원 자체라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만족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보화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신뢰 대상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최고의 것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최고의 것이란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전파될 때 무언가를 해내시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만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만족이 되시는 그리스도 그분 자체의 가치와 소중함도 알려지는 것입니다.” –115-

 저자의 강해를 읽고 있노라면 영광의 정점에 계시는, 아니 영광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다. 수많은 영광 중 꼭대기가 아니라 영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것이 가장 커다란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본서를 읽는 독자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설교를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비록 이것이 필자의 처절한 죄성을 거슬러 오르는 내용이지만, 어찌하랴. 행복한 독서가 되는 것은 사실이거늘. 글을 읽을 수 있는 신자라면 일독을 권하며, 글을 읽을 수 없는 신자라면 누군가 옆에서 지속적으로 읽어주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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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의 명강의 노하우 & 노와이 - 개정판 희망의 교육 5부작 2
조벽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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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게, 특히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사로서 무엇인가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치'있는 그 무엇을 찾아 나눠주는 것은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는 수업을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교사로서 가진 일말의 자존심이 될 수도 있으리라. 

 본서는 세계적인 교수법의 권위자 조벽교수가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바들을 매우 쉽게 풀어 쓴 일종의 교육 지침서이다. 교사를 대상로 쓰여진 책이지만 생각을 조금 바꾼다면 부모가 읽어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부터, 몸가짐, 교육철학, 교육방법 등이 통합적으로 글에 잘 녹여져 있다. 요즘 많이 나오는 소위 '진보적 교육방법'과 조금 다르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조벽교수가 한국인이기에 그럴 것이다. 학생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어 자율성만을 강조하는 요즘 교육의 대세와 달리 조벽교수는 교사의 '권위'도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교육'이라는 큰 주제를 보면서 많은 교사와 학부모가 읽으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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