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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고백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아름다움-아름다움이라는 놈은 무섭고 끔찍한 것이야! 일정한 잣대로는 정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무서운 거야. 왜 그런지 신께서는 인간에게 자꾸 수수께끼만 던져주신다니까. (...) 실로 신비는 무한하다니까! 이 지구상에는 어지간히도 많은 수수께끼가 인간을 괴롭히고 있어. (...) 야아, 실로 인간의 마음은 광대해, 지나치게 광대할 정도지.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걸 좀 줄여보고 싶다니까. 에이, 제기랄,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네, 정말! 이성의 눈에는 오욕으로 보이는 것이 감정의 눈에는 훌륭한 아름다움으로 보이니 말이야. 애초에 악행(소돔) 속에 아름다움이 있는 건가?
...... 그나저나 인간이라는 건 자신이 찔리는 것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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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다들 아마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더라도, 그가 '할복자살한 예술가'라는 점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예술가의 죽음에는 사람들이 그가 이룩한 예술 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왜일까. 왜 그런 것일까.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가 비록 할복자살이란 센세이셔널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충분히 논쟁적인 작가로 남았으리라는 점을 확신하게 될 듯하다.
누가 소설 속에서 감히 가면을 벗으라 했는가?
소설은 원래 꾸민 이야기, 그 판에서 노는 한바탕 놀음이다.
하지만 가면이 살을 파고들어가버린 이 소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짜와 가짜 사이를 너무 교묘하게 넘나든다. 그래서 난, 너무 고통스러웠다.
인생은 가면 무도회. 한 판의 연극. 그걸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작가.
정말 그의 말처럼, 그는 살까지 파고든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는 가면을 썼기에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시절, 내가 있던 동아리 이름이 '탈'이었다. 마당극 동아리였다. 그리고 허름한 동아리방에는 이런 말이 붙어 있었다. "탈을 씀으로써 탈을 벗는다" 인간이란, 가면을 쓸 때 자신의 본질에 대해 한층 자유롭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일본은 꽤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동성애에도 별다른 죄의식을 부여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냥 내 짐작이다. 하지만 수십 년 전을 살았던 작가가, 만일 동성애자였다면 그가 인생을 한 판의 '가면무도회'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임은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몸에 각인된 반응과 사회적으로 보여야 하는 반응이 다를 때 인간은 매순간 연극을 한다. 비록 책 말미 해설엔 그가 동성애자였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붙어 있지만, 난 모르겠다. 어떤 편이었든 간에 그가 일생을 걸고 가면과의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면과 한 몸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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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0 예의 '연기'가 나를 이루는 조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이미 연기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위장하는 의식이 내 안에 있는 본연의 정상성까지도 잠식해서, 그것이 위장된 정상성일 뿐이라고 일일이 일러주지 않으면 속이 개운하지 않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나는 거짓밖에는 믿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이다. (...) 이러다가 나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마저 불가능한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p.150 그와 동시에, 가령 이별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남녀 관계라는 것은 '모든 것이 지금 상태 그대로'에 멈춰 있기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또 하나의 착각도 무너뜨렸다. 나는 숨막히도록 똑똑히 깨달았다. 하지만 어째서 이대로여서는 안 되는가. 소년 시절 몇천 번을 물었던 그 물음이 다시 입가에 떠올랐다. 어째서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모든 것을 옮기고 모든 것을 유전하는 흐름 속에 내맡기지 않으면 안 되는 괴상한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부과되어 있는 것일까. 이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의무가 세상에서 말하는 '생'이라는 것인가.
p.179 출발하는 날 아침, 나는 물끄러미 소노코를 바라보았다. 여행자가 지금 막 사라지려는 풍경을 바라보듯이. 모든 게 끝났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로 지금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나 혼자만은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주위의 다정한 경계의 기척에 몸을 내맡기고 나 자신을 속여보려 애썼지만, 나만은 모든 게 끝났음을 알고 있었다.
p.218 잠시 동안 우리는 늘 하던 대로 무의미하고 헛되게 맴맴 도는 불성실한 대화를 이어갔다. 더위 탓이었을까, 그런 대화가 더욱 공허하게 느껴졌다. 타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찰나에 그때까지 꾸었던 즐거운 꿈을 잃기 싫어 다시 자보려고 애쓰지만, 그 애타는 노력 때문에 오히려 더 말똥말똥해져서 결국 꿈을 잃고 말았을 때의 기분, 그 빤하게 가르고 들어오는 각성의 불안, 그 깨어나는 순간에 느끼는 꿈의 허망한 열락, 그런 것들이 우리 마음속을 질 나쁜 병균처럼 파먹고 있음을 나는 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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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나도 나를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보이고 있는 진실이 뭔지, 진짜 나란 존재는 뭔지 모르겠다. 사춘기도 아닌데 갑자기 그런 질문에 부딪혀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다.
가면놀음은 즐겁다. 그렇지만 평생 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하는 게 인생이라면... 언젠가는 살까지 가면이 파고들기 전에 한번 벗어보고도 싶다. 어쩌면 가면을 벗는 일은 단지 가면을 떼낸다고 될 게 아니라 또다른 가면을 씀으로써 가능해질 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