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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은 없다
최영훈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고 뭔가를 쓰려고 하다가 책 날개를 보게 되었다. 엇, 저자의 이력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역시 이력이 따를 수 밖에 없구나. 서울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나왔기 때문에 비판이 가능하다는 모순이 일어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회이다. 해당 분야와 전혀 무관하고 독립적이기 때문에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어 객관적이 판단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곳을 거쳐야 평가가 가능하다니 객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지 않다. < 넘사벽은 없다 >(엔트리, 2013)에서는 제목을 통해 주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도 그런 스펙에 갇혀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출판사의 편집의도와 흥행을 위한 포장일 수 있다. 그런데 책의 재질이 너무도 좋다. 이것 또한 너무도 큰 모순이다. 저자는 속세의 일반적인 조건을 거부하고 떠났다. 그리고 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시야를 갖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세계의 스펙을 가진 선구자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떠났다.
그래서......
다 늙어서 떠났다.
학교도, 토익도 자격증도, 대외 활동도, 공모전도 다 때려치우고 떠났다.
알기 위해서 떠났다.] 31
다 늙어서라는 말 또한 모순이다. 넘사벽? 저자가 지은 제목이 아닐지라도 그는 이미 그 벽에 갇혀있다. 그가 정말 자신의 주장을 펴고 싶었다면 이런 제목으로는 절대 책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또다른 현실과 타협했다. 결국 다시 사차원도 아닌 삼차원 보다 낮은 벽으로 들어온 것이다. 다들 사회라는 벽에 갇혀 꿈을 펴보지 못하고 좌절도 하지 않은 채, 실패도 하지 않은 채 착하게 순응한다. 사회 체계가 만든 훌륭한(?) 교육제도와 트렌드가 이런 순한 사람들을 양산했다. 저자 넘사벽은 없고 자신은 국제MIA로 재능을 기부하며 이러이러하게 산다고 말하지만 하나도 멋져보이지 않는다. 그도 어딘가에 얽메여 한계에 부딫혀 계속 그러한 커리어를 따라 나갈 운명이라 생각한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라.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는 다수가 아니라다른 생각을 하는 소수다.] 167
거짓말이다. 물론 아주 소수는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슬픈일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빛도 보지 못한채 그냥 뒤에서만 조종하며 사는 조물주 같은 삶을 사는 건 인생이 아니다. 어설프게 신을 모방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건 지배가 아니라 뒤에서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제작한 감독이지만 전혀 인정 받지 못한 흥행 실패의 영화감독일 뿐이다. 앞으로 당당히 나와 인정 받으며 다수가 되는 게 인간의 삶인 것이다. 저자도 그런 의도로 책을 쓰고 나온게 분명하다. 그런 인정이 필요없고 소수로만 살려 했다면 책을 낼리 없는 것이다.
부지런히 욕망하는 그는 남들보다는 낮다. 그러나 역시 틀에 갇힐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인정해야만 한다. 지인이 상반기 공채에서 여러 업체에 합격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다른 업체 발표를 기다리고 있으며, 신체검사를 걱정하고 있다. 마치 일등이 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정말로 걱정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격이다. 저자는 널리 알려진 통계를 소개했다. 걱정하는 90%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라고. 겸손과 걱정의 경계는 모호를 넘어 동일시 되고 있다. 넘사벽 또한 존재하지 않음과 모호와 동일시 되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스펙을 탈피하고 그런 현실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건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스펙을 쌓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독설, 힐링의 시대 아니, 그런 순간이 혼재되어 있는 가운데, 과연 저자는 어떤 삶을 살려고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자신이 어떠한 것에 도전해 보려 했고 그것에 가까이 갔는지가 중요하다. 저자의 주장이 와 닿지는 않지만, 남들과 다른 도전을 했고, 이를 후배들에게 알리려 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며 도전에 망설이는 이들에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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