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 아직 어른이 되기 두려운 그대에게 건네는 위로, 그리고 가슴 따뜻한 격려
정희재 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맨 처음 생텍쥐페리의 책 어린왕자를 읽은 건 인천으로 이사하고 나서 신협에서 도서 대여 서비스를 해줄 때 였다. 유명한 책이라 소장할만도 했지만 백과사전이나, 위인전 시리즈만 집에 있었지 단행본은 없었다. 그래서 단행본은 어린 시절 자주 접하진 못한 것 같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도서관을 통해 단행본들을 만나, 그 때부터 이런 류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어린왕자를 보며 난 무엇을 느꼈을까? 지금도 집에가면 어린왕자에 씌여졌던 상식들이 노트에 적혀져 있을 것이다. 지구에 관한 통계들인데, 세계 국가들의 수라던가 인구에 관한 내용으로 당시 나에게 흥미를 줬던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수에 관심을 가졌지, 순수한 마음으로 책을 읽지는 못했다. 도서 <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지식의숲, 2011)는 어린왕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을 위한 책으로 세심한 설명과 저자의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준다. 어린시절 읽었던 책을 근 20년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린왕자의 마음을 알게 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장 난 엔진의 분해를 서둘러야 했기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숨에 아무렇게나 상자를 하나 그려 주며 말했다.
"네가 갖고 싶어하는 양은 바로 이 안에 들어 있어."] 27p
어린왕자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추상적으로 그렸듯이, 어린왕자와 수준이 맞으려면 그가 원하는 걸 그려줄 때, 상상할 수 있도록 모든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세상은 갈 수록 구체화하려 하고 모든 걸 수로 표현하려 한다. 그래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도 합격, 불합격에서 숫자로 된 점수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사람을 연봉으로 평가하고, 외모를 키로 산정하는 일은 상상력이나 창의성을 저하시킨다. 아이들의 그림은 매우 추상적이다. 그만큼 창의적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알아볼 수 없다는 말로 더 구체적으로 그리길 원한다. 만일 피카소가 추상화를 그리지 않고 구체적인 사물이나 인물을 그렸다면 과연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피카소도 아이들처럼 창의적인 추상화를 그렸던 것이다. 자세히 알려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에 갇혀있는 나. 어린왕자와 반대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없는 공간에 묶여있는 나는 사회에서 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어른의 생각만 하는 지금, 어린왕자는 소행성에서 떠날 때 처럼 이런 말을 하고 나를 지나쳐 버리겠지.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나도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지도 모른다. 어린왕자가 여행중에 발견한 술꾼. 그는 잊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나는 자신의 가식을 잊고 상대방에게 숨김없이 말하기 위해 마신다. 또한 힘든 일을 잠시 잊고 즐거움을 느끼려는 생각에서 마신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어린시절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술꾼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다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의 인정. 주말, 주일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이부분을 읽게 되었다. 어린왕자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너는 정말 이상해'
[어쩌면 지리학자도 변하는 것들을 보는 것에 지쳐 서재에만 머물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탐험가가 내미는 돌멩이만 보고도 먼 산의 바람과 강, 바다, 그리고 사막의 별빛 같은 것을 꿰뚫게 됐는지도. 그게 아니라면 현실과 부딪치기 두려워하는 겁쟁이일지도 모르겠다.] 160p
지인에게 내가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자전거를 탄다고 하자, 왜 그런 일을 하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직접 가서 보나, 인터넷으로 보다 같다는 얘기다. 난 그래도 직접 갔다. 자전거를 배에 싣고 섬으로 들어가며, 새들의 날개짓과 바다내음을 맡으니 대자연의 신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이 실제인지 조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직접 가서 확인한다는 쪽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체험속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누군가가 편집해 놓은 가공된 정보만 보는 건 창문으로 한정된 곳만 바라보는 것과 같다. 미국인 중에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방문 없이 자료를 통해서만 쓴 사람이 있었다. < 국화와 칼 >(을유문화사, 2008)은 저자의 번역서인데, 그는 어린왕자에 등장한 지리학자와 유사하다. 이 책으로 혹평을 받았는데,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어떻게 방문하지 않고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서만 저술할 수 있었을까? 지리학자는 신뢰성 있는 정보 수집을 위해 추궁하고, 확인한다. 그런면에서 네티즌들은 진정한 지리학자이다. 검찰보다 수사에 능한 탐정들. 그들이 현장에 직접 가지않고도 어떻게 그렇게 실감나는 정보를 만드는지 신기하다. 사실보다 더 사실같은 정보를 만드는 지리학자들은 이 시대의 거짓말쟁이들이다.
어린왕자가 만났던 왕, 지리학자, 술꾼, 허영꾼 등은 모두 이 시대의 독특한 특성을 나타내는 인간들의 전형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제야 그걸 이해하고 있고. 시의 해설을 읽는 건 독자의 상상력을 침해할 수 있다. 각자가 느끼는 서로 다른 생각을 방해할 수 있다. 어린왕자도 시로 본다면 매우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아니면 순수한 눈으로 내용을 읽으 수 없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 어린왕자 내용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설명의 구성은 정말 친절하다. 설명을 읽기 전에 내용을 생각해볼 수 있고, 그런 상상 후에 저자의 해설과 경험, 교훈을 들으며 비교해볼 수 있다. 책의 2/3 정도 읽었는데, 다 읽기가 두렵다. 어린왕자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해버리면 어린왕자와 대화하기 위해 다가가고 싶어질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세상의 이치와 충돌하는 나를 보며 괴로워하고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지리학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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