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문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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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뭐가 어려워?

오늘이 어려워.

오늘이 왜 어려워?

오늘을 넘겨야 하니까 어려워.

오늘은 넘긴다는 것은 뭐야?

오늘을 견디는 것이지.

오늘을 견딘다는 것은 뭐야?

그건 오늘은 사라지지 않겠다는 거야.

오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뭐야?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뭐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야.

내일은 사라질 수 있다는 건 뭐야?

내일은 못 견딘다는 것이지.

내일은 못 견디면 어떻게 되는데?

내일을 넘길 수 없게 되지.

내일을 넘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쉬어질 수도 있다는 거야.

경애의 마음이란 책 속에서 상수라는 인물이 그의 엄마와 나눴던 대화 장면에서 열심히 타자를 치다가 멈춤 상태인 커서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깜빡거리고 있다.

내가 2년 전 나눴던 엄마의 대화와 일치한다.

태어나서 수없이 엄마를 불러봤다.

하지만 화장실에 쓰러져 밤새 내내 몸부림친 흔적이 전전한 축축하고 뻣뻣한 엄마를 붙들고 하늘을 찌를 듯 가장 처절하게 엄마를 불러본 건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쉬워지는 내일을 선택하였을까?

나 또한 그렇게 일 처리하듯이 119를 부르고 경찰서에서 사건 경위를 조사받듯이 쉽게 해결해갔다.

맞다. 한 사람의 죽음도 어찌 보면 일 처리하는 듯 영수 막내딸답게 야무지게 일 처리했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나도 쉬워졌다.

아니 사실은 익숙함이 사라진 나날의 연속이었다.

매일 세네 차례 엄마의 안부를 묻던 내가 만든 익숙함이 엄마의 부재로 인해 지금은 주인 없는 전화에 습관적으로 번호를 누른다. 사람이 죽으면 몸무게 차이가 21그램이라고 한다. 내 엄마의 21그램의 영혼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그 뒤로 모든 스치는 것이 엄마였다.

담양 거리에 그늘에 쉬고 있던 한 할머니의 싸디싼 옷을 보고 우리 엄마랑 옷이 똑같다고 하니 시장에서 파는 싸디싼 옷이라서 그런가 보다는 할머니 말에 싸디싼 옷이라 너무 흔해 눈에 잘 띄어서 비싼 옷 못 사준 것에 한숨 쉬고,

어머니가 해주신 패물을 팔아 새로운 것으로 하면서 어머니 반지를 하나 해줄 때도 내 어미 굵은 손에 한 번도 금가락지 못해준 것이 안타까워 흩날리는 눈 속에 실어 날리고, 어머니 생신날 커다란 꽃다발과 주변 분들과 나눠드시라고 주문한 따뜻한 떡시루를 보듬고도, 마지막 담근 김장김치를 쭉 찢어 먹으며 고개를 젖힐 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그래 이 맛이야 하며 엄마 맛을 볼 때도, 경연에서 한 가수가 부른 살다 보면 살아진다를 들으면서도 우는 모든 순간에 모든 것이 엄마였다.


낮 동안 못다 흘린 눈물은 밤이 되면 베개를 홀로 적셨다.

밤마다 변하는 달처럼, 내 마음도 모양을 바꾸어가며 꽤 오랜 시간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괴로움이 나를 붙들고 괴롭혔다.

한 번도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없는 신랑이 이 마음을 이해하기엔 아직도 그가 겪어야 할 인생이 나보다 짧기에 이 아픔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서울에 가면 시구문이 있단다.

죽은 자를 내어 가는 문. 죽은 자만이 통과하는 문을 통과한다는 문

죽음이 육체에서 끝나는 것인지 영혼이 계속되는지의 물리적 존재와 비물질적인 존재인지에 대해서 논쟁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엄마의 영혼이 이미 저 시구문을 넘어섰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문 앞에 서게 된다.

기쁨이, 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또는 절대 열고 싶지 않지만 열고 나가야 하는 문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엄마의 시구문을 쳐다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똑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내 인생에 가장 훌륭한 인생 도서관으로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엄마라는 실체는 사라졌지만 사는 동안 나에게 몸소 보여줬던 엄마의 사랑과 가르침이 나에게 남겨있다. 어쩌면 엄마의 시구문은 단절과 이별의 의미가 아니었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서 또 다른 시작을 이겨내고 나아갈 수 힘을 배운다.


내일을 넘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쉬어질 수도 있다는 거야.


나는 이 대화 뒷부분을 이어가고 싶다.

쉬어질 수 있다는 게 뭐야?

살아진다는 거야.

살아진다는 게 뭐야?

기억한다는 거야...


내가 엄마를 기억하면 된다.

내가 곧 엄마니깐.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제공받아 개인적인 느낌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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