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검정 고무신
노형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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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도 책을 연속으로 읽은 작품이 추억소환이다.

작가님의 연배가 60년대생이신듯한데 나와 같다는게 우습다.

아마 60년대와 70년대 오빠들과 지냈다는 점과 시골에서 자랐다는 것 때문에 비슷했을거라고 생각되어진다.

아마 책에서 언급된 내용을 우리는 다 알고 있더라도 외국인이 읽는다면 그게 뭐지?라며 위키백과사전을 들쳐볼 것 같다. 이 내용은 그 당시를 지냈던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고 요즘 아이들에게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야기다 되어버릴 것이지만 말이다.

일치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래그래 하면서 박장대소를 하면서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봄여름가을겨울이 들어있는 한편의 동화책을 들쳐보는 것 같다.



언덕에 앉아 삐비를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댄다. 

풀뜯는 염소옆에서 한소쿠리 쑥을 캔다.

보리타작이 한창일때면 보리의 까스람때문에 밤새 긁고 옆집 아재가 구워준 보리를 먹으며 입주변이 까매진 것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밤새 내내 낑낑 대던 누렁이에게서 어린 송아지를 빼내던 아버지

소똥을 치울때면 어김없이 외양간을 나와 온 들녁을 미친듯이 뛰어다니던 송아지를 모든 식구들이 나와 체포하던 그날들

누에가 밤새 뽕잎을 긁어먹던 날  친구의 팔 위에 누에를 올려놨다가 폴짝거리던 모습을 보고 웃기도 했던 개구쟁이

뽕잎을 따다가 입안가득 오디를 따먹고 하얀 진딧물 그물을 머리가득 이고 뽕잎푸대를 끌고 나오던 때

이른 일요일아침 늦잠과 만화영화의 유혹때문에 나가기 싫지만 고추를 따러 가야 했던 때

모내기철이면 모를 찌고 나르고 못줄을 잡고 새참을 내오고 천번을 심고 난 후에야 허리를 펴야 할 만큼 힘들었던 때

어김없이 드렁허리가 뱀인줄 알고 도망가다가 논둑에서 미끄러져 논에 흠뻑 빠져 울던 때

다리에 붙은 줄도 모르다가 집에 와서 얼마나 피를 많이 먹었는지 커다란 공벌레처럼 툭 떨어진 거머리를 걸레에 대고 내 피 다내놓으라며 꿀럭꿀럭 토하게 만들었던 때

여름

더운 여름날 수로에서 물놀이하다가 옆마을에서 버린 수박이 동동 떠내려오면 친구랑 신난게 먹던것

단장이던 동네오빠의 부름으로 온마을 청소해야 했던 울력

걸어서 한참을 다녀야 했던 학교

어김없이 흘러내려 책까지 염색시켰던 내 김치뿐인 도시락

 너무 맛있어서 오빠의 저금통을 털어 몰래몰래 사다먹다 걸려서 혼났기도 했던 라면

가을

나락을 베고 한데 모은후 탈곡기를 열심히 발로 구르고 다시 싣고 집으로 가고 가을빛에 몇날몇일을 발로 저어가며 말리고 소먹이였던 짚단을 말리고 묶고 리어카에 싣고 혼자서 언덕집까지 끙끙대며 끌고 왔던 기억

겨울

김일의 박치기를 보겠다고 마을에 몇대없었던 티비를 가지고 있던 우리집에 모두 모이는 바람에 그 인열로 안방에 놓았던 고구마가 다 썩어버린 기억

허벅지만큼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나가서 쓸어야 했던 눈

비료푸대 하나들고 눈길을 아이스링크처럼 만들어서 혼났던 그 때

나무를 때던 때라 겨울땔감을 하러간 엄마와 오빠들을 위해 마중나갔다가 얼어죽을 뻔했던 그 추위

내 추억속에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오빠도 있고 어린 나도 있는데.....

여기서 글을 쓰는 도중 갑자기 눈물이 난다. 추억이 그리움으로 변하는 순간이 된다.

지금은 그 아빠도 없다

 그 수많은 계절을 보낸 엄마는 늙고 병들어 그 시절을 한탄한다.너무 힘든시절이였다고.

오빠들과 나는 이제 40후반과 50대 초반을 여행하는 중이다.

그래도 좋다.

추억속에는 힘들었지만 모든 가족이 함께 있었으니깐.

작가님도 검정고무신이 많은 추억을 선물했다고 한다. 다시 검정고무신을 신고 고향마을을 천천히 걸어도 보고,발다닥이 땀이 나도록 달려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뭘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말타기를 해보고 싶고 팽나무 아래에서 다짜꾸리 하다가 저녁무렵 밥먹어라하는 힘찬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녁밥연기속을 가르며 집을 향하고 싶다.

이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 수구초심처럼 고향을 그리워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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