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 살아간다는 것

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호화로운 스노볼 안 액터들의 삶과 그렇지 못한 바깥세상에 대한 묘사는 영화 설국열차에서 명확히 구분된 계급 사회를 떠올리게 했다.

스노볼 내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바깥세상에 거주하던 주인공 전초밤이 결국 그토록 원하던 세상으로 들어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재미와 스릴로 가득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개가 좋았고, 아무 의미 없는 듯한 묘사와 대사들이 후반부에 복선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놀라웠다. 스노볼의 스타 고해리와 바깥세상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전초밤, 그리고 고해리를 대신하게 된 전초밤. 책을 읽고 나니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하나이며, 나와 또 다른 자아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얼마 전에 보았던 미드 키딩의 대사 “Be yourself”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초밤을 포함한 네 명의 여성들이 한뜻으로 계획했던 바를 이루는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기에는 구성력이 정말 탄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이 없었고, 오랜만에 아주 재밌는 판타지 영화를 감상한 느낌이었다. 영어덜트 소설인 만큼 청소년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우리의 탄생 목적이 사라졌다. 나를 기다리는 위대한 인생 계획과 화려한 수식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내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내일의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허상을 흉내 낼 필요도, 나의 존재를 숨길 필요도 없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일의 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또 다음 날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행복도 습관이다

행복은 이어달리기 - 마스다 미리 그림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제가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 “별다른 일 없이 보낸 하루가 의미 있고 소중한 날”이라는 생각인데요, 이번 책을 보니 작가님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계셔서 반갑고 기뻤습니다.

책의 마지막 이야기처럼 아무 일도 없는 날이 좋은 날이겠지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뭔가 신나는 일을 기다리던 저는 이제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일지라도 감사와 행복을 느끼려합니다. 

<행복은 이어달리기>를 읽고 더욱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 책은 앞으로 일상이 무료하고 지칠 때마다 꺼내 읽으려 해요. 옆에 두고 오래, 자주 보고 싶은 책입니다.

더는 공허하지 않았다. 사라진 것은 아니고, 가슴속 상자에 담겼을 뿐. 분명 또 갑작스레 얼굴을 내밀겠지.

동심이 느껴지는 <당근 유치원>

당근 유치원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안녕달 작가의 <당근유치원>.

지쳐있던 마음에 단비 같이 다가온 그림책입니다.
새로운 유치원을 낯설어하던 아기 토끼가 

곰 선생님의 진심에 마음을 열게 된다는 따뜻한 이야기에요.

그림에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동심이 너무 잘 느껴집니다.

잠시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시절도 잠시 생각나더라구요.
무엇보다 그림체가 너무 아기자기하고 섬세합니다.
캐릭터가 말하는 대사들은 작가님이 직접 쓰셨는데 

대사 하나하나 너무 귀여워요>_<

저는 유치원 원생들은 토끼지만 교사들은 토끼가 아닌 동물들인 게

너무 참신하게 느껴졌어요❣

그림책 추천합니다!

우리 선생님은 예쁘다

대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주인공 ‘영’과 알아갈수록 궁금해지는 ‘규호’.

둘이 처음 만난 이태원 클럽부터 함께 데이트했던 낙산공원, 규호의 집이 있는 인천까지. 독자로서 그들이 가는 곳을 함께 다니며 도시의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매일같이 보고 느끼던 곳이지만 책을 통해 본 도시의 장면들은 뭔가 낯선 느낌이랄까. 책을 통해 평소 몰랐던 대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카일리.

영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때론 약점이 되기도 하는 그것은 어쩌면 형태만 다를 뿐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짐 같은 그것. 때론 그로 인해 많은 부분을 희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살아갈 동력을 얻기도 하는 그런 존재. 하지만 영이 결국 중국으로 가지 못하고, 규호와 헤어지게 된 건 너무 마음이 아픈걸... 가제본 너란 녀석, 정말 감질나게 하는구나..!

요즘 책을 예전보다 너무 안 읽는 것 같아 신청했던 창비 서평단. 박상영 작가는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제목을 본 순간부터 어떤 분일지 궁금했다. 어쩌다 보니 자이툰 파스타보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먼저 읽게 되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박상영 작가의 독특한 문장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읽다 보면 소설 문장이 아닌 랩 가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시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피식피식 웃게 하는 유머코드가 제일 매력있다. 이게 소설의 문장으로 쓰일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한 느낌.

정식 소설집에는 대도시의 사랑법 외에도 3편의 이야기가 더 실려 있는데, 또 어떤 문장들이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영과 규호라는 두 청년의 사랑을 보며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가 떠올랐다. 문학의 소재가 다양해진 만큼 독자가 받아들이는 폭도 이전보다 넓어진 것이 느껴진다.

[100자평]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ㅣ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앗코 상사와 파견직 미치코가 인연을 이어나가는 줄거리를 바탕으로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구조가 독특하다.각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직장인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지만, 자신을 지켜봐 온 주변인으로부터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다.독자인 나에게도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