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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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는 보스니아의 소도시 비셰그라드를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무대로 1516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400여 년간의 발칸 역사를 담아낸 대서사시이다. 


이야기는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재상 메흐메드 파샤가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며 겪은 이별의 아픔을 품고, 고향 비셰그라드의 드리나 강에 거대한 석조 다리를 세우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완공 이후 4세기 동안 다리는 이슬람교도, 정교회 세르비아인, 가톨릭교도, 유대인 등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지닌 주민들의 만남, 소통, 축제, 그리고 삶의 애환이 얽히는 중심지가 된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병,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폭풍 속에서 다리가 군사적 충돌로 파괴되는 비극을 맞이하며 막을 내린다. 


소설의 핵심 의미는 불멸의 상징과 인간의 유한성으로 요약된다. 


인간의 생명은 짧고 정권은 유한하지만, 돌다리는 영원히 자리를 지킨다. 다리는 인간의 야망, 증오, 사랑을 묵묵히 지켜보는 '존재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드리나 강은 동양(오스만)과 서양(오스트리아), 이슬람과 기독교가 만나는 경계선이다. 소설은 이 경계에서 피할 수 없었던 문명 간의 충돌과 역사적 상흔을 깊이 있게 통찰한다. 


저자는 홍수, 전염병, 전쟁, 고문 등 끊임없는 재앙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고 다리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민초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예찬한다. 


소설에는 단일 주인공이 없다. 오직 '다리'만이 유일한 주인공이며, 수백 년 동안 거쳐 간 수많은 인물들의 짧은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촘촘히 엮여 거대한 역사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지역에 내려오는 전설, 귀신 이야기, 민요 같은 구전 문학적 요소가 실제 역사적 사건(제국들의 흥망성쇠)과 정교하게 결합되어 서사에 입체감과 신화적 아우라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특정 민족이나 종교의 편을 들지 않는다. 오스만 제국의 잔혹한 고문 방식이나 오스트리아 제국의 강박적인 근대화 과정을 모두 삼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냉철하고 담담하게 관조할 뿐이다. 이 서늘한 객관성이 오히려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느낌이다. 


총평하면 <드리나 강의 다리>는 역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 짓밟히는 인간의 운명을 다루면서도, 결코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이보 안드리치는 피로 얼룩진 발칸의 역사를 거시적이고도 미시적인 시선으로 완벽히 통제하며, 문학이 어떻게 한 지역의 역사를 인류 보편의 신화로 격상시킬 수 있는지를 증명해 냈다. 


노벨 문학상은 이런 작가에게 주어져야 한다. 민족사적 비극을 편향된 시각에서 왜곡하고 소설화하여 마치 객관적 사실인 양 대중을 선동하는 작가에게 잘못 주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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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으로 읽는 티벳 사자의 서
강선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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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수행자 강선희의 <체험으로 읽는 티벳 사자의 서>는 어렵고 관념적이기 쉬운 티베트 불교의 사후 세계관을 저자의 실참(實參) 경험과 현대적인 사례를 통해 대중적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파드마 삼바바의 원전 사상을 바탕으로, 죽음 이후 49일간 의식이 겪게 되는 세 가지 바르도(Bardo, 중간 상태)의 과정을 명확히 안내해 준다. 


• 바르도와 해탈의 단계적 제시: 의식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의 '치카이 바르도', 본질의 빛과 환영을 만나는 '초에니 바르도', 환생의 길로 접어드는 '시드파 바르도'를 단계적으로 설명하며 사후에도 해탈할 기회가 있음을 강조한다. 


• 현실적 영가 천도와 빙의 현상: 관념적 이론에 그치지 않고, 죄업으로 방황하는 영혼들이 산 사람에게 미치는 빙의 현상과 이를 다스리는 실제 천도 과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 전통 장례문화와의 접목: 티베트의 사상과 한국의 전통 49재 및 장례문화를 연계하여, 사후 세계에 대한 동양적 지혜가 우리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까지 비교·분석하고 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원전이 가진 고도의 종교적 진입장벽을 '체험'이라는 열쇠로 허물었다는 점이다. 


마치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친근하고 흥미진진한 구어체 스타일을 구사하여 불교 교리가 낯선 독자도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위빠사나, 간화선, 티베트 불교를 직접 수행한 저자의 이력과 10여 년간의 호스피스 임종 동행, 임사 체험자들의 증언을 결합하여 텍스트에 강력한 현장감과 신뢰성을 부여한다. 


또한 고대 스승들이 직관한 정신세계를 칼 융의 심리학적 해석이나 현대 과학의 관점과 비교하며 서술함으로써 현대인들이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준다. 


이 책은 죽음을 공포나 허무의 대상이 아닌 '삶의 연속선상에 있는 거대한 전환기'로 인식하게 만든다. 윤회와 해탈이 죽은 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마음가짐(명상과 정화)과 직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웰빙의 화두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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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공부 - 청화 큰스님 말씀
청화 지음 / 아시아문화커뮤니티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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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라는 것은 진리에 입각한 마음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반야지혜와 더불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무명의 눈으로는 바로 못 보기 때문에 미운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죄는 밉게 보는 ‘나’에게 있습니다. 


깨달은 분의 입장에서는 돈오돈수라고 말하든 돈오점수라고 말하든 아무런 흠이 될 게 없습니다. 다만 중생의 그릇 따라서 도인들은 그때그때 성품을 안 여의고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진여불성뿐이다. 다른 것은 다 헛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염불하면 그것은 바로 염불인 동시에 염불선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상은 법계연기입니다. 우주의 실상, 우주에 충만해 있는 끝도 갓도 없는 진여불성이 인연 따라서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진여연기, 법계연기라 합니다. 


유물주의 사상에 입각한 자본주의 또는 공산주의 등은 결국 우주의 진리에 따르지 않았으므로 인류에게 해악을 남기고 결국에는 붕괴되고 맙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 공산주의가 무너졌으니까 앞으로는 자본주의 사회가 옳다고 생각해서 정말로 자유 경쟁을 하고, 끝도 갓도 없이 소유관념을 확대해 간다면 그것 역시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회에 참여를 한다 하더라도 나나 너나 모두가 다 하나인 본질자리, 본성품 자리를 깨닫는 데에다 역점을 두는 것이 참다운 사회 참여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근본적인 사회 병리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괴로움은 무엇인가? 모든 괴로움의 근원은 자신의 관념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있다는 생각에 고통이 있습니다. 


공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허무주의에 떨어지고 맙니다. 공의 알맹이, 공 그 자체는 바로 진여불성입니다. 


인(因)과 연(緣)도 비어 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천지우주는 물질이 아닙니다. 공간성과 시간성, 또는 인과율도 초월해 버리면 결국은 다 마음인 진여불성뿐입니다. 


설사 우리 집안의 영가가 와서 우리를 침노한다 하더라도 그냥 제도가 됩니다. 정말로 영가 몸도 비었고, 분명히 모든 것이 다 비어 있는 것이므로 확실히 비었다고 믿고 되뇌이며 공부를 한다면 자기 주변의 영가도 제도를 받는 것입니다. 


청화 스님, 속환 사바하셔서 저희들을 일깨워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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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 스님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운명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삶
청안 지음, 양언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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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본체를 깨달으면 나와 이 세상은 진실로 하나가 된다. 


이원성을 초월하면, 그 어떤 정체성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상황과 관계와 수용을 항상 관할 수 있게 되고 우주와 하나가 된다. 


나의 문제가 즉각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세상이나 인류의 문제가 즉각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의(-ism)로 특징지어지는 사고로는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 
영적으로 맑고 성숙한 성인이라면 ‘-주의’를 버려야 한다. 이원적인 생각을 초월한 마음으로 돌아가라. ‘-주의’ 상자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 문명은 비참하게 퇴락할 것이다. 

직선적인 과거 현재 미래는 허상이다. 마음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과거, 현재, 미래는 없다. 시간과 공간은 집단으로서 우리가 가진 업, 인류의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시공을 만들고 경험하고 있다. 

무위는 좋고 나쁨이라든지 운명이라든지 오온에 기초한 정체성을 만들지 않음을 뜻한다. 

이원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오온에서 자유로워지며 마음의 장애에서 벗어난다. 이것을, 이 초월적 지혜를 ‘오직 모를 뿐’ 또는 ‘모르는 마음’이라 부른다. 

과거, 현재, 미래와 씨름하면서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이 순간을 맑게 하십시오. 


일체의 불필요한 생각을 끊어낼 때 진정한 지혜와 자비가 나타난다. 우리의 실체를 깨닫는다고 끝이 아니다. 사실 실체를 깨닫는 것은 자연과 생명체, 또는 온 우주에 더 이상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 삶의 시작을 뜻한다. 


선업은 나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괴로움을 없앤다는 뜻이다. 악업은 나 자신과 세상에게 더 큰 괴로움과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만든다는 뜻이다. 


타인을 위한 기도가 최고다. 타인을 위해 기도하면 ‘나’가 사라진다. 

이 ‘모르겠다’는 걸 지니면 일체의 장애가 사라진다. 장애가 없으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집착하지 않으면, 어떤 정체성으로 인해 망상을 피우지 않는다면, 어리석음도 없고 이원성도 없어 장애와 두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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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치료
서광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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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과 자비는 또한 고통의 근본 원인인 무지를 제거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자신의 불행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오직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성장을 빌어주는 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유산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삶의 모습이다. 세상에서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유산은 그들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삶의 모습이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살의 사랑에 이르지 않는 한 서로 고통하고 갈등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유아적인 사랑으로는 실망과 좌절과 분노의 고통을 피할 수가 없다. 보살의 사랑을 훈련하고 실천하는 길만이 고통이 없는 사랑, 참으로 행복하고 완전한 사랑을 체험해 가는 길이다. 


내가 부처이든 신의 종이든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구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찾아가는 그 과정이 바로 참다운 삶과 죽음의 길을 인도하는 진정한 진리의 길이다. 


좌절이나 고통 또는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에 접근하지 못한다. 분노나 원망은 오직 배신이라고 하는 원인과 기대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단순한 반사적 반응일 뿐이다. 그리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반응이 아무리 정당하고 당연하다 해도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불행하고 황폐한 삶 뿐이다. 


지금 누군가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누군가 지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부처님의 특별하신 가피가 내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지금 아파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자신이 이생에서 반드시 깨닫고 훈련해 가야 할 엄청난 삶의 교훈과 지혜가 들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삶의 소중함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그 순간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존재하는 그 순간에 머무를 줄을 아는 사람들은 그 순간순간을 전 존재로 살기 때문에 이전의 순간이나 이후의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올바른 견해는 세상의 누구도 내가 상상하고 판단하는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세상에 어떠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라는 사실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 ‘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올바른 견해를 훈련하는 궁극적 이상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사물의 실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의 욕망에 아무런 직접적인 시도를 보이지 않는다. 불교는 인간의 욕망 자체에 아무런 좋고 나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무지를 밝히는 일에 전념함으로써 욕망의 자연스런 소멸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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