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알바여, 정치하라 정치의 시대
은수미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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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결연한 제목의 책이다. 정치의 시대를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는 누가 이렇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다분히 마르크스적인 기호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쓴 것을 후대의 누군가가 문학적으로 오마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 절실한 외침을 누구나 가슴속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왠지 작금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깨나 정겨운 연대의 제스처로 들린다. 만국의 누군가들은 항상 기다리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 바로 그 연대. 일과 노동이 고민 없이 그저 행복하거나 그로부터 정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들에게는 그런 연대가 최근 몇 년간은 자못 비장했다면, 이제는 조금은 나아진 얼굴로 할 수 있게 되었나 싶다. 도발적이지만 불안하지 않은, 이렇게 외쳐도 괜찮고 희망적일 것 같은 날들이 열흘 정도 지난 것 같다. 마치 이런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 책은 아주 발랄한 문장의 타이포그래피와 새삼 발랄한 은수미 의원의 사진이 표지를 감싸고 있다.


창비의 '정치의 시대' 시리즈 중 은수미 의원의 <만국의 알바여, 정치하라>를 읽었다. 일단 이 책은 책이 아니고 과업으로 수행하길 바라는 '정치'를 요구하는 것 또한 아닌지라 그런 점들을 짚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다. 


이 책은 단지 책은 아니다. 책이라는 형식으로 엮여 나왔을 뿐 실제로는 어디선가 은수미 의원이 강연을 하거나, 지하철역 앞 어딘가에서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터넷에 글을 남기거나, 광장에서 연설을 한 말의 채록 엿보기에 가깝다. 은수미 의원이 실제로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국회방송의 필리버스터를 보는 것 같다(실제로 책에는 작년 필리버스터 채록이 들어가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너무 금방, 빨리,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뜨겁게(?) 마음에 빨아들여 온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나는 30분 만에 다 읽었다). 필리버스터를 보고 광장에서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에 젖어드는 기분과 정치서를 독서하는 기분을 같다고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이 책은 전자에 가깝다. 이런 기분의 이유는 아래의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은 정말 정치를 하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산다는 게 바로 정치에의 참여와 판단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있다. 그리고 행복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것들이 박탈당하지 않는 삶을 바란다. 높은 이상주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다움'만큼은 본능적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그 정도 목적만큼은 누구나 권리로서 추구해야만 한다. 


굳이 이 책 <만국의 알바여, 정치하라>의 메시지는 주지하지 않아도 예상이 될 것이다. 현대인은 바로 그 인간다움이 박탈당하는 경험을 노동의 순간에서 많이 겪는다. 계약은 있지만 재해에 대한 책임은 없는 아웃소싱, 최저 임금, 고용 불안 등이 그렇다. 정말 그렇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들 겪어온 것이 아니던가. 은수미 의원은 이러한 인간다움을 박탈당한 작금의 아르바이트생, 계약직, 고용이 불안한 누군가들에게 이런 시대를 유발한 자본과 기득권 세력의 헤게모니, 그리고 이를 초래한 지난 시대와 선배들의 정치적, 행정적 시행착오를 사과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개혁을 위해 필요한 실천을 이야기한다. 그건 곧 정치의 실천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다소 정치적이지만 정말로 정의 사회를 위해서는 필요한) 은수미 의원의 정치적 견해와 이렇게 행동하고 실천하기까지의 경험, 다음 정권 혹은 국회에서 꼭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정치적 의제들을 주장한다. 매우 짧고 쉬운 책이지만 생각보다 이 책에는 은수미 의원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소간 정치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삶에서 동떨어질 수는 없는 필수적인 이야기들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뉴스에 반짝하고 뜬 속보는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약속과 일자리 관련 예산 투입에 대한 것이었다. 이 책은 이런 뉴스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내용 또한 다루고 있다. 고용 정책 및 제도 개선이 현실화되어야만 하는 이유와 지금껏 무책임하게 이어진 현실의 비정상적인 상황들. 노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 노동자 연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마침 최근의 이런 뉴스들을 읽고 제도 개선이 현실화되어야만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이 책을 읽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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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자의 향기
왕안이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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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에 오래 살거나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그곳의 숨결에 온전히 젖어들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가 마치 사람과 같이 자기 자신의 역사와 기억을 품을 수 있고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지금의 숨결과 향기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 이야기들이 도시의 안팎으로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도시의 생활인이 토박이가 되어 그곳을 익숙하게 아는 문제 하고는 좀 다른 것 같다. 막연하게 오래 살고 오래 지내다 보면 토박이가 될 수는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 누가 살고 있으며, 어디에 가면 어떤 것을 찾을 수 있는지를 다 외워버리게 되니까 말이다. 


단순히 도시에서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함께 쌓인 나의 시간과 기억을 역사라는 형태로 이해하고 생각해보자는 것을 <상하이, 여자의 향기>라는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태도를 객관적인 역사를 통해 읊어 내려가는 식으로 보여주면서도, 개인이 경험한 상하이를 매우 사밀하게 이야기한다.


굳이 번역서의 제목은 '향기'라는 단어가 붙어서 역사의 깊이에 왠지 서정적인 느낌을 곁들였는데, 사실 이 책은 원제가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성별과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어떤 '관점'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책이기는 하다.


 <男人和女人, 女人和城市>가 원제인데, 오히려 이런 원제를 살리는 것이 이 책이 가진 시간의 깊이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상하이의 역사적 풍경이 내내 펼쳐지는 이 책은 단순한 풍경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내내 살아온 자기 자신과 과거 상하이 사람들의 역사를 탐구'하여 이어붙인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처음부터는 조금 시작되었는데, 왜 번역서의 제목은 원제와 다르게 붙게 되었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되기는 한다.


역사적 풍경이라는 인상 때문에 그저 딱딱한 내용인 것 같지만, 사실 <상하이, 여자의 향기>는 상하이에서 듣고 배워온 풍경의 재구성, 경험한 역사를 다시 쓰는 것에 문학적인 색채가 끊이지 않고 내내 이어지는 책이다. 그래서 그런가? 번역서의 제목은 다분히 서정적이고 목가적인데, 그러니까 이건 의도된 번역인 것 같기도 하다. 구체적인 상하이의 풍경이 마치 흑백 보도사진처럼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이 책에는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여자라는 자의식이 글쓰기의 모태가 되는 듯한 왕안이 작가의 성향을 따라서 문학적인 레퍼런스와 색채가 진하게 배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상하이, 여자의 향기>라는 제목은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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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채소의 진실
가와나 히데오 지음, 전선영 옮김 / 판미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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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채소를 키우고, 구입하고, 먹는 일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누구든 상태가 좋지 않아 나쁜 채소를 먹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먹거리라면 더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채소에 대한 이러한 주의와 관심이 자본주의적으로 요구되었을 때 나타난 것은 유기농, 친환경, 오가닉이라고 하는 일련의 상품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잘못된 환원의 실상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진짜 채소'에 대한 진짜 정답을 내려주는 책이다. 유기재배한 채소의 썩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은 가히 놀랍기까지 하다.


재배하는 자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섭리대로 키우려면 인고의 시간을 버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비료나 좋은 양분보다도 중요한 것이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버텨내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진짜 채소'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루고자 하는 이상의 세계는 결코 한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명품에 부여할 수 있는 이러한 수식은 채소에도 적용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진짜 채소가 자라나는데 필요한 / 필요하지 않은 흙과 비료를 이야기하고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한다. 채소 배양에 대한 진짜 의미와 함께 이런 '자연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의 '진짜' 메시지와 의도를 읽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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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사랑하라 - 몸과 뇌를 변화시키는 14가지 사랑 습관
마시 시모프.캐럴 클라인 지음, 안진환.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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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하게들 말할 수 있는 인간의 절대 가치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이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랑에 대한 함정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사랑'이라는 가치와 함께 하기 때문에 정말로 언제나 사랑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능력을 잊어버린 사람들, 혹은 서투른 사람들에게 이 책은 '기술'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을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건강하고 순수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가장 투명한 사랑의 마음을 키우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나 자신의 정화를 통하여 가장 순수하고 투명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 왜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태도인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그 잠재력을 해치고 있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와 두려움, 불안감, 집착이나 불만족과 같은 불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 없는 사랑'의 실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제1의 사랑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꾸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2부에서 그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현재에 뿌리내리라 / 신체에 진정한 영양분을 공급하라 / 내 안의 사랑받을 수 없는 부분까지 사랑하라 / 내가 충만한 상태에서 나누라 / 사랑의 언어로 이야기하라 /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라 / 명상을 통해 현존감을 느끼라 …


목차의 소제목만 보고 있는다면 이 책이 과연 사랑에 대한 진정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곧 삶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고 사랑을 하는 주체가 변화되었을 때 그 사랑도 진정한 사랑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위한 나 자신의 "현존감"을 일깨우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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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 - 댄스 스포츠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
방현희 지음 / 민음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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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집중된 요즈음, 그 열기를 차분하게 언어의 감정으로 풀고있는 책. 춤에 대한 교본도 아니고 전문적인 '춤꾼'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열정이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게 바로 이책의 매력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춤추러 간다>의 표지가 푸른 색인것도 매우 마음에 든다. 반드시 붉은 열정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반드시 '춤 전문가'의 에세이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춤 전문가가 아닌 어느 여류 소설가의 춤 이야기는 그래서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왠지 나도 주변의 댄스 학원에 등록해 편하게 춤에 입문하고, 그 소탈한 기분을 방현희 작가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본문의 챕터는 춤 이름으로 되어있다. 룸바 / 탱고 / 왈츠 / 차차차 / 자이브 / 삼바 / 파소 도블레 / 폭스 트롯. 각각의 춤을 닮은 작가의 소탈한 이야기와 춤 교습소에서 알게 된 여러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춤의 특성에 실어 자유자재로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문적으로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교습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샤리권"의 이야기는 매우 인상깊었다. 스물다섯살의 나이에 운명적으로 보게 된 한편의 비디오가 그녀의 인생을 '춤 그자체'로 바꿔놓았다는 것. 이 책은 멘토에 관한 이야기도, 삶에 열정을 갖고 살라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샤리권 선생의 '춤 인생 연대기'를 통해서 열정과 아름다움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특히 자신의 인생을 "탱고"와 같다고 이야기 하면서 탱고의 경쾌하면서도 비장함이 매력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몸'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인 만큼, 인생을 논하는데 있어서 몸의 격정과 애환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춤'이 사람들의 인생과 맞닿아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운명인 것 같다. 작가의 에필로그를 보면 "춤은 몸과 몸이 움직이는 것, 몸은 그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써있다. 아마도 이 문구가 바로 이 책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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