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의 방 - 2019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진유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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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는 이 소설의 제목에서의 '무해'가 무해(無害)인 줄 알았다. 그래서 제목  '00의 방'이 지시하는 공간은 유해하지 않고 해가 없는,  쾌적한 어떤 기분을 제공하는 곳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무해는 주인공의 이름이라고, 소설이 거의 시작하자마자 나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해'라는 이름에는 왠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은 아니니까. 아니면, 이 단어에서는 왠지 바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안개 가득한 물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개인적인 감상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상상과 함께 <무해의 방>을 읽었다는 사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요하면서도 망망한, 하지만 어떤 검은 슬픔이 드리운 것 같은 공간의 느낌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무해'라는 이름의 첫인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소설의 소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우리 사회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들이 우리 사회 안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큰 균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주인공 '무해'의 무해함을 사전에 깊이 인지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탈북자 출신인 '무해'에게 초로기 치매가 찾아오며 그의 딸인 모래에게 그녀의 비밀-이라기보다는 지난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북한 압록강 근처 혜산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보게 된 강 건너편의 반짝이는 빛에 닿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기로 한다. 그리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귀순한 여성이다. 


배경이 배경이다보니 배고픔에 대한 절실함이 주인공을 통해 표현될 수밖에 없다. 물론 <무해의 방>은 그 문제를 르포식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매 순간은 배고픔에 대한 고통과 트라우마를 문신처럼 새기고 있었다. 사실 '배고픔'을 다룬다고 해도 정말 '식량'에 대한 한정적인 고민을 다룬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식량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풍족하게 살고 있는 우리는 식량에 관한 문제라 한다면 딱 그 단어에만 매몰되어 '먹는 일' '먹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곤 한다. 사실 이것은 인간 삶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도 말이다. <무해의 방>은 바로 그 배고픔이라는 감정과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식량에 관련한 문제를 북한의 음식과 실향민의 그리움, 그리고 '맛'이라는 감각을 통해 푼 소설이기도 하다. <무해의 방>에서는 북한의 몇 가지 음식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는데, 그 음식이 만들어진 이유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왜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가 인간의 삶의 그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무해의 방>은 사실 짧은 분량 치고는 읽기가 좀 버거웠던 소설이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이야기의 소재 자체가 '멀면서도 사실은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 '모래'의 태도는 상당히 희망적이었고 어떤 끈을 놓지 않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라 그 힘을 따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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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일본사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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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역사책, 좋은 역사책이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덕목으로는 역시 잘못된 해석이 없는, 올바른 역사 인식과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좀 추상적인 말인 것 같기는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역사야 말로 끊임없는 해석 과정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지라도 역사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역사의 이런 '살아있음' 속에는 현재 우리 삶의 해법이 있기도 하다. 이것이야 말로 역사책에 계속 눈길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



<처음 읽는 일본사>는 그래서 제목부터 좀 재미있는 편이다. 나 같은 성인 독자 기준으로, 대충 생각해봤을 때 일본사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스스로를 이야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본 역사는 국사 시간에도 곁들여서 배운 적이 있고, 세계사 시간에도 배우기는 배웠다. 그리고 각종 매체에서 일본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환기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외국 보다도 우리는 일본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만 그 반응이라는 것이 역사를 '아는' 것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아무튼간에 우리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하여 적당한 분노와 적당한 지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한' 수준인 사람이 많고 그런 비판받아야 할 지점을 넘어 일본의 전반적인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이런 상황에 놓인 성인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 <처음 읽는 일본사>는 꽤나 도움이 된다. 아주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낮은 눈높이로 쓰인 것도 아니라서 읽기에도 적당하다. 당대의 역사를 보다 생생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 사료도 많다. 독자의 연령을 막론하고 역사 입문서에 사료가 많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막연하고 어려운 과거의 이야기가 휘발되지 않고 머리에 남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약간 간지럽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역사적인 상황을 극화하여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사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통사적인 '일본사'는 아니다. 정확하게는 '이이토코토리'가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좋은 것은 취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 우리의 문화와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 이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전략이었다. 그래서 <처음 읽는 일본사>는 역사책이기도 하면서도 일본이라는 국가의 전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전략을 읽기 위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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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 아빠의 방목 철학
이규천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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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많이 먹고 어른이 된지도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님들을 보면 나는 때때로 수십 년 전의 어린이로 돌아가고는 한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는 것도, 잊었던 어리광이 다시 살아나 엄마 아빠 앞에서 그런 것들을 부리기 때문은 아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아빠와 TV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어릴 적 엄마 아빠와 나눈 장면이 다시금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엄마와 아빠는 당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하거나, 나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시고는 한다. 그럴 때면 느끼고는 한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이런 사소하지만 비슷비슷한 시간들이 쌓여서 나라는 인간을 만드는 데에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것들을 희미하게나마 느낀다. 마치 나의 느낌들 처럼,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는 부모와 자식이 조금씩 교감하고 같은 시간을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의미가 되어가는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나간 책이다.


나는 이 책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를 방법론으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자녀의 인성 교육론이나 어떤 모습이 이상적인 아버지상인지, 그런 걸 가르치는 책으로 보지 않았다. 아마 저자 역시도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저자 이규천은 머리글부터 자신에게 이런 교육서를 쓸 자격이 특별하게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두 딸이 미국에서 저명한 교수와 변호사가 되고, 대중의 인기를 얻는 가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공이 특별한 자신의 방법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역시나 '성공한 두 딸'을 키워낸 비법에 관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비법이 과연 무엇인지는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텐데) 역시나 예상대로 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예상되는 답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지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두 자녀들에게 항상 '용기'를 주는 것에 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저자인 아빠와 딸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잊어버려"라는 말이 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잊어버려(forget about it)'이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딸들의 성장기 속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응원해주어야 했던 역할의 아버지가 해준 일이란 이런 메시지의 공유였다. 그런데 나는 이 메시지를 아직 성장하고 있다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마 이규천 저자 역시도 자신에게 이 메시지를 줄곧 던지면서 좌절의 상황이 닥쳤을 때마다 자신을 다독이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의 입장이 아닌 내가 궁금했던 것은 나 자신이 나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였다. 다행히도 책에는 답이 있었다. 잊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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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말
켄 로런스 지음, 이승열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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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아닌, 그렇다고 예술 근처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나에게 예술가는 선망의 대상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가 돈을 많이 벌고 유명세를 떨치기 때문은 아니다. 예술로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주장하고, 그런 행위들로 세상을 다양하게 만드는 그 자체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이나 이념이 나와 다른 예술가라 할지라도, 본인의 생각을 계속해서 표현하려 하는 그런 추진력, 그리고 자신감과 용기는 항상 배울 점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비틀스(이 책에서는 beatles를 '비틀스'라고 표기한다)의 멤버 존레논은 아름다운 노래를 많이 만든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메시지 또한 음악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대단한 인물이다. 그래서 존레논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왔는지는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궁금해 마지않을 것이다.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면 그런 노래-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 <존레논의 말>은 그의 생각을 담은 '말'을 발췌하여 담은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엔 왠지 'Imagine'의 선상에서 그의 심오한 말을 예상해 보았다. 그런 것 치고는 표지가 상당히 귀여운 스타일이라 좀 의외기도 했지만. 그리고 이 책의 분위기는 표지를 닮아 있었다.


존레논은 가벼운 노래 가사도 썼지만 다소간 철학적, 구도적인 노래 가사도 많이 썼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나 말 역시도 그와 같은 무게가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존레논의 말>에는 그런 점들을 모아둔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은 오히려 심플한 인터뷰 질문과 심플한 답변이 주를 이루고, 긴 고민 없이 말하던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나온 말들을 모아 놓은 책에 가깝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알맹이 없는 말들도 선별된 이유가 뭘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렇게 한없이 가볍기만 한 책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존레논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은 그런 생생함을 주었다(번역이 탁월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좀 과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하층민을 표현할 때 '흙수저'로 번역하기도 했더라). 존레논의 일상적인 말들이라 하더라도, 그 일상 속에는 항상 그의 생각과 철학, 가치관이 녹아있었다. 그래서 음악 관련이 아닌 사생활, 부인 오노 요코, 자식들에 대한 존레논의 말들 역시도 한 인물의 일관된 생각 속에서 한 말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존레논의 몽상은 항상 생생했다. 날카로우면서도 온화한 평화를 원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듯한 존레논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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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나와 세상을 마주하기 위한 365개의 물음
다나카 미치 지음, 배윤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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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먼저 해보겠다. 보통 책을 볼 때 어떤 환경에서 보는지 궁금하다. 주변이 조용하고 집중이 잘되는 곳에서 보는지, 아니면 소란스럽고 번잡한 환경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보는지. 나는 두 가지 환경에서 모두 책을 잘 보는 편이다(그렇다고 책을 많이 보는 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책을 잘 볼 수 있는 환경은, 역시 전자이기는 하다. 온전히 내 신경과 감각을 책에 쏟을 수 있고, 나에게 와 닿는 세계 역시도 책 이외의 것은 없이 책 오로지 하나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책 <질문>을 들었을 때는, 이 책을 어디서 읽으면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책은 도대체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이 독특한 책 <질문>을 내 주변이 생생히 살아있는 곳에서 읽으면 좋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주로 출퇴근 길에 읽게 되었다.


부제를 보니 '세상을 마주하기 위한'이라고 쓰여있다. 365가지의 질문(영어 질문까지 합치면 700개의 질문이 넘는다)이 담긴 이 책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질문'만 있다. 뭐 예를 들면 '세상에는 말할 수 있는 물고기가 있을까요?' '셀 수 없는 세 가지를 말해 보세요.' '사람은 몇 살까지 사는 게 적당할까요?' 등등. 상식 바깥에 있는 질문도 많고 그동안 살면서 한 번쯤은 궁금한 적이 있었던 그런 질문도 있다. 어떤 페이지에 머물렀을 때는 질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고, 어떤 페이지의 질문은 시덥지 않거나 별로 궁금한 부분이 없어 그냥 넘긴 것도 있다. 이 책은 특정한 서사나 방법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 스스로 가장 편한 방식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중에서 나는 조금 시끄럽고 주변의 풍경이 여러 겹이 될 수 있는 곳에서 읽었다. 그게 바로 내가 세상에 대한 질문을 읽고, 그 답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다 덮고 나면 무언가 머리에 남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질문을 읽고 답을 생각한 그때에만 딱 집중을 하고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서 잊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은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조금은 뜬금없는 생각들로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생각을 해보고 싶고 아무것도 궁금한 것이 없을 세상에 새로운 궁금증을 갖고 싶다면 읽어볼 책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질문>이라는 단순한 책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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