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 - 탐험을 위해 태어난 쾌속 범선 라 벨라 이야기
드니 게디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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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72일 첫 출항을 한 아름다운 쾌속 범선 라 벨라.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직접 가서 보는 여행을 하고 회귀선을, 적도를 넘기도 하며 13일 동안 표류하다 발견한 곶 희망봉에도 가 본 탐험선. 아쉽게도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아메리카 너머를 찾아 떠나고 태평양을 태평양이라 부르게 된 것은 라 벨라의 모험심 덕분이다. 라 벨라가 북극성을, 남십자성을 보며 탐험한 흔적이 세계지도가 되고 지도를 더 손질하기 위해 또 항해하며 다음의 더 나은 항해를 위해 지도를 손질하던 라 벨라. 라 벨라가 두루 항해한 지구에서 마지막 목적지 라플란드를 끝으로 라 벨라는 범선들의 고요한 묘지로 들어가 그 너머를 본다. 그 전 시대 바다를 누빈 범선들과 함께.

 

이 책은 범선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 안에 지구와 별과 지리에 대한 정보를 지식이 아닌 지혜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그 순간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배라는 점이 파도를 넘고 표류를 하면서도 별을 보며 버티고 지키는 용기를 준다. 탐험을 하기에 규모가 크지 않아도 제 몫을 찾아 해나가는 모습, 풍파와 풍파와 풍파뿐이더라도 다시 떠나고 또 떠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넓히고 세상은 좁히는 의지에 감탄도 나온다. 20년 만에 돌아온 개정판이라는데 100페이지 가량에 올 컬러, 아이들과 같이 읽기도 좋고 읽어주기에도 좋으며 선물하기에도 좋다. 지도 살피는 재미도 있고 표지와 띠지도 물론이거니와 삽화의 컬러감이 예술이다.

 

첫 출항 무렵 겁주며 얘기하던 노인 선박의 모습이 된 라 벨라는 말한다. “네게 보이는 것을 얘기해다오, 그럼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말해줄 테니…….” 과연,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디쯤에 있는 걸까. 어쩌면, 내 아름다운 시간이 정박한 채 그냥 흘러가고 있지는 않나.

 

읽기 나름의 멋과 맛이 넘치는 항해일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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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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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잇는, 격동의 시간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

눈 앞에 그려지는듯 미학적 서사로 시작한 호랑이 사냥꾼에서 야마다로 이어지고, 죽임을 당한 백 씨가 평양의 은실과 이어진. 소설적 설정이라 치부하기엔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기에 어쩌면” “맞아, 그럴 듯해할 인물 간의 연결고리들이 안타까웠다.

기생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들은 그 시대가 그들의 선택을 그렇게 종용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사회의 암묵적 인정이 느껴져서 화가 나기도 했다.

시간을 따라 쭉 이어지는 전개가 아닌, 중요한 길목마다의 장면들만 보여주어 들려주지 않은 그 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드라마로 제작된다는데,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영상미를 기대한다.

 

p.429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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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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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사샤 세이건의 책에 이어 실험물리학자 해리 클리프의 다정한 물리학에서 또 만난 문장.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우선 우주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그 영향으로 원제목이 <에서 사과파이 만드는 법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인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 친절한 조리법까지 제공한다. 조리시간이 무려 138억 년 소요되는.

 

다정한 물리학. ‘아니, 어떻게 물리학이 다정할 수 있나?’로 시작해서, ‘물리학이 다정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학문이 다정하다는 거야!’로 끝났다. 화학 전공자인 나로서는 이 책의 내용부터가 너무나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었던 데다가, 물리의 정없음이 알고 보니 깊은 애정이었음을 몰라 본 나의 무지와 오해를 반성한다.

우리가 보는 우주의 모든 것이 선스펙트럼처럼 제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해도, 우주의 오븐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가깝고 연속된 집합체로 두었다. 누구는 신의 섭리로, 누구는 우주의 원리로 또 누군가는 그저 받아들이면서 저마다의 사과파이나 떡볶이를 궁리한다. 그 궁리의 도중에 이런 책을 만나면 꽤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하고 호기심에 불을 지피기도 하겠구나 생각하는 것은 나의 대학 시절 전공과 이과적 호기심의 기여가 크다. 하지만, “차세대 충돌기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돈이나 정치, 또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힉스입자 연구에 일생을 바칠 젊은 물리학자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언급(p.451~452)과는 달리 사실은 궁금했고 찾고 싶으며 알고 싶고 알아내고 싶은 호기심이 더 많아져 물리도 우리도 서로에게 다정한 사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좀 더 욕심 내자면, 화학도 물리도 수학과 기계장치와 우주까지 쭉 맛 볼 수 있는 이 책이 중고등학생들에게도 깊이 읽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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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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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질 줄 몰라도 된다고!

하지만 부러질 생각도 없다고!!

시종일관 깡그리한 엘리자베스를 보자니 

왜 팔자에 없는 딸 보는 친정엄마가 되고 마는건지 ..


요리는 과학이라며 물분자가 어쩌구 이성질화가 어쩌구 .. 엘리자베스표 커피는 마셔보고 싶긴 했는데 커피집을 하셨음 어땠을까


설마 이렇게 죽는다고? 싶던 캘빈의 마지막이 너무 속상했고 여섯시 삼십분이 매들린에게 대신한 애정을 쏟는 것이 짠했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대사가 쫀득쫀득하며 시점이 자유롭게 왔다갔다 심지어 개의 시점까지 나올줄이야! 재미있었다 


엘리자베스 조트와 매드 조트와 여섯시 삼십분의 뒷이야기가 엄청 궁금하니까 조만간 2권을 봐야겠다


“그대가 살아갈 많은 날들에 의심보다는 확신으로 노 저어가시길 응원합니다!!”

p.211 "그대가 살아갈 날은 많……다. 많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캘빈과 누워 그가 어린 시절 주문처럼 되뇌었던 말을 들려줬던 슬픈 밤을 떠올렸다. 살아갈 날은, 많아.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 P211

p.276 "조정이 재미있는 점은 말이죠, 앞을 보지 못하고 노를 저어야 한다는 거에요. 조정이라는 운동은 마치 우리에게 자신을 앞서가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같달까요."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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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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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미션이나 숙제 느낌 없이, 귀농에 대한 단 꿈도 아닌 이야기로 읽고 그림으로 만져본 책, 이웃집 식물상담소. 정말 이웃에 이런 상담소가 있다면 처음에야 쉽게 들어서지 못하겠지만 하루 이틀 기웃대다가 그림에 반해 홀린 듯 들어서지 않으려나 싶다. 온실같은 갤러리에 발을 들인 기분으로 끝까지 읽었다.

식물로도 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절화는 이미 살아있지 못 하게 된 꽃이라는 걸 왜 자각할 수조차 없었나, 남산 타워 아래에 열쇠가 그렇게나 많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네, 깃대종_맹아지_자연사_식물인간, 등등 이야기마다 어머! 어머! 하며 읽었다. 그리고 생각난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던 김초엽님의 지구 끝의 온실, 작가의 말에 나온 이야기. 그래, 식물은 뭐든 될 수 있어서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로든 뿌리내릴 수 있구나, 멋지다.


당연한 듯 초록을 보지만 키워낼 줄은 모르고, 좋아는 해도 할 줄 아는 대로만 할 뿐 뭘 좋아하는 지 궁금해한 적이 없었던 나의 화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갈증을 달래 줄 물로 대신 해본다.


p.164 식물이라는 생명에 대해 소유가 아닌 반려가 시작될 때 사랑하는 식물은 잘 자라줄 것이다. 


p.280 아, 처음 알았어요. 이런 거. 어릴 때 진작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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