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품어야 할 법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사자주의, 억제와 균형, 정의의 추구 같은 로스쿨 개념은,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조각상처럼 부식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법은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곳엔 오직 타협과 개량과 조작만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무죄냐유죄냐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유죄 아닌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사건이란 싸구려 하청으로 지어진 건물과 같다.
귀퉁이를 잘라먹고 철근을 빼먹고 거짓말로 그 표면을 색칠해버린 빌딩.
따라서 내 일은 날림공사의 페인트를 벗겨 균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균열마다 손가락을 밀어 넣어 더 넓혀놓아야 하고, 균열을 있는 대로 키워 건물을 무너뜨리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그 안에서 의뢰인이라도 빼내면 된다. -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