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누워 한 뼘 휴대폰에 떠오르는 것을 톡톡 두드려 넣는 시간 동안 쓰는 일이 나다워지는 일이며 나를 구원하는 방식이구나 싶었다. 무수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배우로서가아닌 그저 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오며 느꼈던 기분좋은 어색함과두근거림, 그리고 잔인한 물결들을 지금 이 책에 고스란히 잇대고싶다는 열망만은 분명하다.
당장에는 그럴 만한 일이 크게 없었지만, 아마도 크기가 정해진 주머니에 수위가 차올라 더이상 작은 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발작처럼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삶이었길래 그랬을까. - P43
이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생각‘만이었던 것처럼 회의감을 베개 삼아 시간에 드러누워 열량만 축내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까. 하고 싶은 걸 찾기는 할 수 있는 건가 또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발전하고있다는 자기위안 속에서, 나는 허송세월을 너무 즐기고 있는건 아닌지... 진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뭐라도 해내야 하는 일에 있는건 아닌지... 가치라는 프레임을 씌우자면 곧 버려질 시간들로부터 수당이라도 챙기는 게 맞는 건 아닌지... 여전히 생각들로만 가득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행동은 막연하고 선택의 폭은 너무 좁다. 무언가 갈증을 느끼다가도 이내 없던 일이 되고 만다. 내 삶에 대한 책임감과 열망의 끝에는 한 뼘짜리 지문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자멸하는 엄지손가락의 고뇌만 춤출 뿐이다. - P17
가능성 ‘1‘을 포함한 이야기는 가능성 ‘10‘을 만들고 누군가의 입방아에 의해 고개가 끄떡여지는 순간 ‘100‘이라는 확신으로 점화된다. 입에서 입을 타고 불붙은 성화가 활활 타오르는 동안 우리는 발가벗겨지고 태워져 얕은 바람에도 쉽게흔들릴 만큼 나약해진다. 태울 것이 미약해져 재미없어진 성화는 이제 관심 없다는 듯 그제야 스스로 꺼지고 만다. 재투성이가 된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두려움을 털어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리에 오를 각오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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