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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민음사)
1권을 읽고 있을 때만 해도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는 아프리카(혹은 나이지리아, 혹은 비아프라) 판 토지랄까, 태백산맥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각 부의 제목이 1960년대 초기, 후기인 것도, 소설의 배경 시점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매우 ‘역사소설’스러웠다. 어쩌면 역사,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를 다룬 한국 드라마들이 같이 떠올랐을 것이다. 최근작인 ‘자이언트’나 ‘전우'보다는 ‘왕초’라든가 ‘야인시대’라든가 아니면 ‘국희’같은 드라마가 더욱 연상되었다. 영원히 얘기할 수 있는 테마의 소설이긴 하지만, 소위 트렌디하다거나 세련되었다는 느낌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권의 끝자락으로 넘어가면서 왜 이 책이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올해 주목해야 할 100대 영문소설’로 꼽혔는지를 조금씩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는 영국 치하의 나이지리아에서 비아프라라는 독립국이 건설되며 벌어진 내전의 역사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이지리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자체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이 없었다. 대학생들에게 배낭여행이란 것은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그 나라들의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체험하는 것임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요즘에, 나이지리아 같이 ‘왠지 아프리카의 위험 지역 카테고리’인 나라들은 뜸하게 신문의 국제면에서 스쳐 지나갈 뿐인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얼룩진 나이지리아의 현대사는 영국 등의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와 오버랩되며,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방 강대국 중심의 세계정세 이면을 폭로했던 (책 속의) 리처드의 행동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은 나이지리아의 상황을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내세움으로써 다각도로 보여주기 때문에 현실이 왜곡될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적 상황들과 버무러진 올란나와 오데니그보, 카이네네와 리처드, 으그우, 이 다섯 핵심 인물들의 사랑, 성장, 배신과 화해에 대한 이야기 또한 현실감 있게 진행되어 독자를 빨아들인다.
여류 작가가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보통 전쟁이 남자들에 의해 이끌어지듯이 소설도 남성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반면에 이 소설에서는 전쟁을 겪게 되는 당사자로는 올란나와 카이네네 두 쌍둥이 자매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남자로는 으그우와 리처드의 시각으로도 많이 서술되지만, 으그우는 무지한 상태에서 점점 깨우쳐가는 어린 소년의 전형으로, 리처드는 백인으로 전쟁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제3자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의미가 좀 다르다. 카이네네보다는 올란나 시점의 서술이 많고, 올란나는 전쟁 상황을 정말 몸으로 다 겪어내는 인물이다. 이런 면모를 고려할 때, 작가는 전쟁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민간인들의 시각에서 전쟁이 만드는 황폐함과 인간성 상실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병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렇게나 명석한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던 오데니그보가 술독에 빠져 살게 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2권을 읽을 때 훨씬 집중할 수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결말 또한 일관되게 현실적인 것이 좋았다.
사소하게는 인물 이름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부족 사회가 남아있는 나이지리아의 모습들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익숙해져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지게 된 것 같고, 역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한 것 같아 읽고나니 뿌듯하다. 나는 역사를 테마로 한 책은 어떤 책이든지 술술 읽어내려가지 못하는 버릇이 있어서(이유를 잘 모르겠다. 대체 왜?!) '밤은 노래한다'를 눈에 담는 듯 마는 듯 읽은 것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이쪽 동네(?)에 발을 끊었는데,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는 꽤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 Half of a yellow sun을 어떤 연유로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라는 제목으로 만드셨을까? 여러 상징을 내포하는 태양이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면 우리가 떠오르게 만들 것'이라는 오케오마의 시를 비롯하여 태양이 뜨느냐 마느냐 하는 얘기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태양이 노랗게 떠오른다, 라고 하면 너무 희망적이거나 뻔한 뉘앙스를 품는 것 같긴한데...... 그래서 타오른다가 낙찰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