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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무너지다 - 1990년대 ㅣ 생생 현대사 동화
이혜령 지음, 양양 그림 / 별숲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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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가 터지지만, 그 모든 것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작고 큰 모든 일들은 사람이 기억한다. 기억을 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르지만, 잊지않고 기억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안다. 기록이든, 사진이든, 음악이든, 책이든 그 모든 방법에는 그들의 마음과 노력이 담겨있다. [1995_무너지다]를 통해 나는 그 시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슬픔과 아픔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고 해서 상관없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는 이들의 애석한 마음을 알기에, 그리고 그들의 기억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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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무너져요!”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이 뛰어 내려왔다. 주위 사람들이 허둥대며 정문을 향해 뛰고 있었다. 도하는 반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을 눈으로 찾았다. 그때였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도하는 공중으로 날아야 어딘가에 부딪혔다. 쿵, 쿠르르쿵. 쿠르르쾅.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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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화가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손등으로 연신 눈가를 문지르는 도하를 바라보던 정우 주먹에도 힘이 들어갔다. 선생님이 도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도하는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울었다.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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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윤아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정우가 체육관을 뛰어나갔다. 정우는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을 구조하던 아빠는 지금 다쳐서 병원에 있다. 도하를 만나러 백화점에 갔던 도현이 형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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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했다. 도하는 이상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만 했다. 정작 잘못한 사람들은 하지 않고, 아무 죄가 없는 사람들만 미안해했다.
“도하야, 너는 아무 잘못 한 게 없어. 잘못한 건 백화점을 무너지게 만든 어른들이지 도하도 형도 아니야. 그걸 꼭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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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러려면 동전 아주머니 딸은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을 해야 했다. 윤아는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나중에, 한참 나중에 하기로 했다.
“엄마, 나 때문에 빵 재료 사러 가느라 갇힌 거 아닌가 걱정했어.”
“윤아야, 엄만 윤아 덕분에 살았어. 엄마가 베이커리 안가고 그냥 매장에 있었으면 살지 못했을 수도 있어. 지하 베이커리 매장에 있었으면 살지 못했을 수도 있어. 지하 베이커리 매장 냉장고 틈새에 끼어서 살 수 있었으니까. 네 덕에 엄마가 무사한 거야.”
엄마는 윤아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손이 닿자, 윤아의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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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무너지다]는 소설이 아닌, 동화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역사는 흐른다.' 과거의 역사가 잊혀지지않고 기록되고 기억되는 건 그것을 남기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뇌가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존경한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꼭 기억해야 할 그날의 기억을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기록해 주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이유는 과거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기억의 힘은 세다. 더는 일어나선 안될 참옥한 순간들.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참사, 4.16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매 순간을 잊지 않고 애도하고 기억해야 사회가 개선되고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는 그날의 슬픔과 아픔의 시간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어른다운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기를.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나누고 위로하는 세상이 지지받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