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 김창완 에세이
김창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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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라디오 DJ이자, 연기파 배우이자, 멋진 음악인 김창완 님의 에세이 출판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달 전쯤 기사를 통해 그가 오랜 세월 라디오 DJ로 활동했던 라디오 방송이 종영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의 오랜 팬이었던 엄마는 얼마나 아쉬울까. 엄마는 출근길에 그의 라디오를 즐겨들었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그의 음악을 사랑했고, 나이가 들면서는 그의 연기와 목소리가 좋다고 한다. 나에게는 선생님 같은 의미라면 엄마에게는 오빠 같은 느낌. 매일 아침, 그의 라디오를 들으면 하루를 선물받는 기분이라고 말했었는데 그런 라디오가 종영된다니 아쉽다. 방송 을 구성하는 작가로서 프로그램 종영이야 흔한 일이지만, 좋은 혹은 장수 프로그램이 종영되면 마음 한쪽이 먹먹해진다. 그렇지만 끝이 있다면 시작도 있는 법. 김창완 님의 신작 에세이를 읽게 되었고, 라디오가 아닌 글로 만난 그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다. 내가 읽은 책은 조만간 엄마에게 선물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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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거의 매일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읽고 나면 원고 뒷면에 그리지요. 제법 그럴듯한 원이 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찌그러진 동그라미 입니다. 그럼 종이도 아깝고 하니 몇 번 더 그리고 다른 이면지에 또 그려요. 정말 수도 없이 그리는데 단 한 번도 흡족한 동그라미가 그려진 적이 없습니다. 가끔 스태프나 기술 팀 막내한테 보여줘요. 그럼 다들 “와~, 진짜 똥그래요.”하면서 환호해 줍니다. 그게 격려라는 걸 잘 알지요. 그래서 더 완벽한 동그라미에 도전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제가 그렇게 수없이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리며 배우는 게 많습니다. 우선은 완벽에 관한 환상과 실제가 이렇게 차이가 크구나 하는 거예요. 오늘 또 재수떼기 하듯 그려볼 거예요. 또 찌그러져 있겠지요. 저의 하루를 닮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실망할 것도 없지요. p.16-17 찌그러졌다고 실망할 것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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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면 맨손체조를 하고, 그때까지는 희미한 등만 하나 켜놔요. 여명이 밝아오는 걸 보려고요. 체조가 끝나면 슬슬 씻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이 방 저 방 불을 켜면 밤새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이 화들짝 놀라 달아납니다. 밥 몇 숟가락 뜨고, 켜져 있던 방 불들을 끄고 현관을 나서면 언제 왔는지 아침이 훤하게 마당을 쓸고 있습니다. 아침은 희망의 상징이지요. 아침이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어제의 후회와 못마땅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어제의 일에 매달려 있을 필요 없어요. 나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좋은 일이라 해도 지나친 생일 파티입니다. 아름다운 아침은 그 아침도 아니고 저 아침도 아니고 이 아침입니다. p.59 아름다운 아침은 언제나 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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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다는 게 참 그렇네요. 만년필이나 시계 같은 것도 몇십 년씩 지니고 있으면 거의 내 몸 같잖아요. 그런 물건들도 그렇고,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들, 그렇게 내 삶이 된 사람들의 존재감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죠. 되짚어보면 그게 다 내 행복의 시작이고, 어쩌면 내 행복의 종착역인데, 이제는 한가운데 들어와 존재감이 희미해진 겨울을 바라보다 생각이 비약했네요. 어쨌거나 잊고 살던 내 주위의 사소하지만 소중한 걸 깨닫는 순간, 행복이 별건가 다 그런거지 싶기도 합니다. 글을 써놓고 더 할말이 없어 휴대폰을 열어보니 친구 문자가 와 있네요. “굿모닝, 새해가 시작됐나 싶더니 일주일이 지나가네요. 늘 즐겁게 지냈시다~.” 친구의 아침 인사가 저의 행복을 흔들어 깨웁니다. p.179 익숙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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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곡 중에 나는 [청춘]을 사랑한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노랫말과 멜로디 전반이 슬프지만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다가 부모님과 자식의 에피소드에서 그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 참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는 미소를 짓게 되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그의 책 속엔 아침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시작이 있고, 삶의 희망이 담겨서 독자로 하여금 행복한 오늘을 살게 한다. 곧 오월 어버이 날인데, 부모님께 선물해도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아마도 김창완 님의 음악을 사랑한 팬이라면 더욱 감동이 될 주옥같은 책으로, 나도 엄마께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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