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 하늘을 나는 교실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81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미향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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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하늘을 나는 교실>은 책의 목차부터가 흥미로웠다. 요일 별로 주제를 잡고 스토리가 이어진다. 월요일의 책, 화요일의 컴퓨터, 수요일의 소장 도서 검색, 목요일의 햄버거, 금요일의 화이트보드, 토요일의 댄스, 일요일의 도서관으로 요일마다 주제를 두고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흥미롭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만난 학교와 청소년의 이야기 속엔 작은 사회가 담겨있다. 미스테리하면서도 참신한 이야기 소재가 참 인상 깊고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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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창문으로 배가 떠 있는 바다가 보였다. 근처의 건물이나 나무가 시야를 가리지 않은 덕에 넓게 펼쳐진 은빛 파노라마를 볼 수 있었다. 이내 숨이 멋는 듯했다. 거의 2년 반이나 다닌 고등학교에 이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얇은 천을 두른 듯 뽀얗고 아련한 빛이 머무르는 바닥으로 에어컨 소리가 빨려 들어갔다. 이 방은 어쩜 이리도 고요하고 시원한걸까. 학교 북쪽 4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흘린 땀이 금세 말라 버렸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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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사노씨’란 사람, 혹시 사사노 고 씨를 말한 거였어?”
“아는 사람이야?”
“토사 붕괴로 숨진 우리 학교 선배잖아.”
“......유명한 사건이었구나.”
내가 놀라자, 에모리는 내가 어떻게 사사노 씨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잠시 망설인 나는 도서관에 어떤 책을 반납한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10년 전 사고와 그 피해자인 사사노 고 씨에 관해 알게 된 내막을 간략히 털어놨다. 그리고 사사노 씨가 도서 위원었다는 건 말했지만, 다른 도서 위원들에 관한 이야기나 또 그들이 기획했던 것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거 사쿠라타로도 아는 얘기야?”
“물론 알지. 내가 책을 반납한 사람 찾으려고 이 일에 끌여들였거든.”
“하지만 누가 반납한 건지는 아직 모른다고?”
“응. 사사노 씨의 고교 시절 친구들에게도 확인했는데 모두 아니더라. 이상하지?”
에모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쿠타로가 변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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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문제였는지 지금도 잘 몰라. 애들이 날 때리거나 발로 차기도 했고, 어떨 땐 사물함이랑 책가방 속 물건도 사라지곤 했어.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 비웃거나, 선생님께 나에 관한 온갖 고자질을 하거나.......”
“심하다. 그건 심각한 왕따잖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말은 가벼워서 싫어.”
그리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얼굴을 찡그린 채 웃어 보였다.
“초 1, 2학년이 할 만한 장난은 뻔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악의란 건 그 행동의 크고 작음이라든지, 심각하고 덜 심각함과 같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있냐?‘ 혹은 ’없냐‘의 문제인 거야. 악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 시절의 나는 무척 힘들었어.” 에모리는 유일하게 그 왕따에 가담하지 않은 초2 때의 반 친구라고 했다. “에모리는 타고난 정의감으로 늘 나를 감싸줬어. 언변도 지금만큼 좋아서 곁에 있으면 무척 든든했지. 한심하게도 에모리의 등 뒤에 숨어서 울기만 한 적도 꽤 많아. 그때 에모리가 나보다 컸기에 나를 지켜주는 늠름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의지했던 거야.”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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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또 만날 수 있잖아.”
사쿠타로는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귀가 발그스레했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내 얼굴도 분명 못지않게 붉을 테니까. 뺨이 뜨거워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럼...... 또 도서관에서, 잘 부탁해.”
“응. 도서관에서.”
우리는 비석 앞에서 어색하게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왠지 월요일의 도서관이 무척 기대된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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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들이 소중하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하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하지만 책 속의 소재와 문장, 대사들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했다. 책 속에 삶이 있다는 말이 참 귀하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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