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안시내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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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작가의 소녀 감성과 여인의 감성을 두루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에세이다. 여행 작가인 그녀의 여행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나는 그녀와 그녀, 엄마와 딸의 애정이 담긴 이야기에 심장이 스며들었다. 담담하지만 단단한 그녀의 글발은 아마도 엄마와의 사랑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참 따뜻하고 뭉클해서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너무도 곱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여행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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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겠지만, 걱정해도 괜찮다고. 내가 함께 들어줄 테니, 다시 같이 길을 걸어보자고. 이제야 당신의 삶을 이해해서 미안하다고.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의 모든 모난 부분을 사랑할 것이라고. 엄마 덕에 이렇게 잘 클 수 있었다고. 어느 봄, 낮은 바람과 잘게 부는 잎사귀와 흔들리는 버찌 열매 사이로 당신의 얼굴이 자꾸만 맴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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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요즘 주된 관심사는 내 연애인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나는 이 연애의 이전까지는 아주 진짜로 푹 빠져서 뜨겁고 불타오르고 헤어지면 죽을 것 같은 사랑은 아니었다는 거였다. 어느 정도 동의를 했지만, 괜히 억울한 마음에 매번 아니 진짜 사랑했다고 대답하지만, 엄마는 특유의 모든 걸 다 안다는 표정으로 웃음만 짓는다. 엄마는 내가 이번 연애가 끝나면 진짜 죽을까 봐 걱정했다. 그렇게 사랑하다가는 진짜로 아프다고 조금만 덜 사랑하라 했다. 또, 그러다 마음이 바뀌면 매일 나를 위해서가 아닌 훈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걔를 안전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법 같은 것들을 가르쳤다. 몇 가지는 나도 아는 거였고, 몇 가지는 이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것들이었다.
“안 싸우는데.”
무뚝뚝한 딸은 역시나 성의 없이 답한다. 엄마는 다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못 참는 사람이라 어차피 다음 이야기를 바로 꺼낼 것이다. 사실 엄마에겐 비밀이지만 종종, 그와 싸움이라고 하기엔 썩 다정하고 대화하고 하기엔 밀도 높은 토론에 가까운 무언가를 한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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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혼자인 것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나와 사람의 애정 없이는 하루도 못 참는 엄마. 남 얘기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엄마와 남한테는 일절 관심 없는 딸. 애교 많은 엄마와 무뚝뚝한 딸. 눈물과 공감이 많은 당신의 이야기를 흘려듣는 나. 몸을 잠시도 가만 못 두는 부지런한 당신과 살아 숨 쉬는 게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게으른 나. 나는 당신의 잔소리가 밉지 않아 낡아빠진 면 팬티를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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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음을. 작은 것들을 외면하지않을 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내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을. 결국, 내가 간절히 꿈꾸던 지상낙원은 내 안에 있었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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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작가를 접할 때 책으로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좀 달랐다. 5년 전 시인보호구역의 초청 강연에서 처음 만났다. 귀엽고 어여쁜 미모가 인상적이었는데, 더욱 인상 깊었던 건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확신에 찬 자신감과 솔직함 속에 묻어나는 그녀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속이 더 깊고 고운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의 말도 좋았지만, 작가의 글 속에서 나는 그녀의 삶을 만났고,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키는 작지만 마음은 큰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어쩌면 여행작가로서 그녀의 삶을 아주 오래 응원할 것 같다. '작가님,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책을 써줘서 고마워요. 독자로서 나날이 당신의 여행기를 기다리고 기대하고 사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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