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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스의 산 2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책.
꼭 사서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도서관에서 찾아볼 생각도 않았던 책.
그러나 눈앞에 꽂혀 있는 녀석을 그냥 지나치기엔 그 동안 이 책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너무 강했다.
산이 있다.
아주 높고 큰, 어둠과 밝음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모두 들어있지만 그냥 '산'이라고도 부르는 존재가 있다. 산은 말없이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살려보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메아리'로 답했다.
"왜? "냐는 질문에는 "왜?" 라는 대답을.
사냥감에 대한 정보는 달랑 '냄새'와 과거 어디선가 맛본 듯한 고기의 '맛' 뿐인.
끊임없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냥개들이 있다. 서로를 무는 일은 없지만 서로를 대신해 방패가 되는 일은 사양이다.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은 바로 나다.
거대한 산을 앞에 두고, 전체적인 윤곽에 대한 추측조차 불가능한 채로, 고다 형사와 그 동료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하면서도 도우며 진실을 향해 끈질기게 수사를 진행한다. 그 과정과 그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그 동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결국 아마추어의 도락에 취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만들 정도로 정교하다.
나는 이 과정을 지겹게 여긴다면 앞으로 어떤 놀이에도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중간에 덮는 일이 생긴다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치욕을 당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 등산... 산을 오르는 일처럼 힘들고 피로가 쌓이고 중간에 쉬지 않으면 풍경마저도 잊게 되는 그런 독서였다. 다만, 미로를 헤매는 것처럼, 어떤 진에 갇힌 것처럼 같은 자리를 도는 답답함보다는 누군가의 안내를 받으면서 힘겹지만 한걸음 한걸음 따라 오르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고다의 등이 없었다면 오르지 못할 산 말이다.
이 무뚝뚝하고 멋없는 사내는 우수하지만 인정받는 것이 그와 같은 무리의 사냥개들 뿐인, 매력이 철철 넘치도록 설계된 여타 다른 일본 추리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신주쿠 상어를 까고 싶진 않지만, 하드보일드라고 떡하니 써붙이고 나온 그보다 이 쪽이 훨씬 '강하다.') 앞서 가는 사람이 축지법을 쓰거나 달려간다면 포기했을 산행이, 묵묵히 오르는 그 등을 보면서 나도 이를 악물게 되면서, 독서는 숨겨진 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주인공의 독백이 결말부분에서 드러나지 않는 점이 일관성이 없어보여 약간 아쉬웠고, 결말이 너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등산이 힘들어서 그 보상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내 투정이 아닌지가 더 의문이라 그냥 그만두려한다.
추리소설을 읽고 뿌듯한 적은 처음이지 싶다.
그리고 나도 잠깐 동안은 가벼운 책만 읽고 싶다고 느낀다.
언젠가는 또 다카무라 가오루의 책을 쥘 것임을 의심할 여지 따위는 없다.
또한 정말 늦었지만 결국 약속을 지켜낸, 요괴전문 출판사라는 오명이 이제는 자랑일 손안의 책 출판사에 대한 애정을 새삼 느낄 수 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