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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ㅣ 이스케이프 Escape 1
척 호건 지음, 최필원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할런 코벤, 데니스 르헤인...
쟁쟁한 스릴러 작가들의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한국의 출판사들 또한 장르소설 팬들에겐 화려하다. 각각의 '에이스' 를 내새워 팬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모습은 책 자체의 재미와는 별개의 맛이 있다.
새롭게 시작된 에버리치 홀딩스의 장르소설 레이블 '이스케이프 '. 그 야심찬 첫 작품은 이름도 생소한 척 호건의 '타운' 이다. 미국 쪽에서 아무리 잘 나가고 반응이 좋았다고 한들, 네임 밸류 면에서 조금은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첫 작품은 그래도 기존의 평이 좋았던 작가의 책이 되는 것이 상식이라는 어줍잖은 참견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어줍잖은 걱정을 '기우' 라는 식상한 표현으로 만들어 주는 것. 거장과 쟁쟁한 출판사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턱에 날리는 강렬한 첫 한 방이 바로 이 책 '타운'이다.
데니스 르헤인의 '보스톤 르와르' 라는 말이 와닿기 보다는, 4명의 친구, 범죄에 얽히고 섥혀 파멸과 성공 사이에서 위태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우리 영화 '친구'와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 같은 인상 깊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만큼 읽는 내내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중반부까지 이 책이 못 미더웠던 것은 사실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스토리에 캐릭터 구도, 진부해 보이는 듯한 사랑이야기와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 작업방식... 자칫 잘못하면 과거의 어떤 이야기 또는 내가 상상하는 뻔한 이야기로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혹은 할런 코벤식의 정신을 쏙 빼 놓는 반전으로 어물쩍 상황을 정리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같은 독자는 복부를 계속해서 때려줌으로서 데미지를 축적시키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물론. 척 호건은 머리가 꽤 좋은 남자였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로 두꺼운 분량임에도 빠르게 책을 넘길 수 있게 만드는 속도감. 기본적으로 이런 재주가 없다면 이 바닥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겠지만, 특히나 타운 같은 경우 클라이막스 부분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의 행동과 회상장면 하나하나가 긴장감있게 진행된다. 여기엔 전적으로 시한폭탄 같은 등장인물 '젬'의 공이 크다. 주인공 '더그' 의 손발 오그라드는 연애장면은 등장하지도 않은 '젬' 덕분에 불안해지며 스쳐지나간 '젬' 때문에 아찔해지며 모습을 드러낸 '젬' 탓으로 엉망이 되어버린다.
' 젬 ' 이라는 캐릭터는 나에게 있어 가장 적절하고 영리한 '망나니' 로 기억될 듯 하다.
둘째 이유는 다름 아닌 절제다. 액션의 과감함을 살리는 것과는 별개로 작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뜬금없는 반전이나 겉멋든 이미지 과잉을 우겨넣는 일이다. '타운'은 그런 면에서 합격이다. 짜맞추기 식의 반전으로 무리수를 감행하거나 기존에 보여준 캐릭터 이상의 행동으로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는다. 그것이 책장을 덮은 독자의 가슴에 '낭만'으로 온전하게 뿌리 내릴 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미학이다. 느와르란 모름지기 화약냄새에 코끝이 찡해서는 안되며, 플레이 타임이나 읽은 시간이 아까워 가슴이 먹먹해져서는 안된다. 이유없이 신속하게 머물다 사라져야 그것이 미학이다.
마지막 이유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야기가 식상함 보다는 '향수' 쪽에 가까운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다. 최근 액션대작 격으로 보이는 영화나 소설 등에서는 스케일과 스토리의 참신성에 비중을 둔 나머지, 과거의 미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운' 은 과거 홍콩 느와르에서 느낄 수 있었던 '멋'과 '순애보' 그리고 '비열함' '비정함' 등이 보여주던 잊혀진 낭만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약간은 촌스러운 설정임에도 그 때의 영화, 노래 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식상한 어색함' 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뻔해 보일 수 있는 스토리가 갖는 장점 만을 세련되게 다시 살려냈다.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고 주요 캐릭터 뿐만 아니라 주변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이 상당히 강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이만하면 야심찬 기획의 야심찬 첫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