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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읽다 보면 특유의 어두움에 질려버리는 책들이 있는데, <사채꾼 우시지마> 같은 만화책이 그렇다. 마나베 쇼헤이의 만화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은 사회의 밑바닥, 그것도 물컹물컹하고 불안정한 연약층을 고개도 못 들고 기어다니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허우적거리다 사라지는데... 읽다보면 참담한 기분이 드는 에피소드들이 참 많다.
나도 읽었다. 열 권이 넘게 읽었다. 답이 나오질 않는 루저 마인드가 넘쳐 흐르던 시절에도 꾸역꾸역.
그러다가 정말 짜증나고 무서워서 백수 생활을 하면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어제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읽다보니 문득 생각났다. <사채꾼 우시지마>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같은 어두운 작품을 읽으면 어떤 확신이 든다. 어둠과 타협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며 집어삼켜져 굴복할 뿐이라는 것을.

어마어마한 돈이 든 가방을 사우나 옷장에 넣어놓고 덜컥 사라져 버린 손님 때문에 고민하는 늙은 남자, 빚을 갚으려 몸을 파는 주부, 야쿠자에게 재수없이 물린 부패형사의 이야기가 세 시점에서 펼쳐진다.
더럽게 꼬여가는 이야기와 범죄가 범죄를 낳는 이야기의 흐름이 느와르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회파 소설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분위기를 놓고 장르를 나누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의외로 다양한 장치들이 산재되어 있는데, 언급하면 재미없어지는 그런 요소들까지 깨알같이 들어가 있다.
억지로 숨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는 스스로가 느낀 위화감을 잘 따라가다 보면, 나름대로 이야기의 큰 틀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편차는 있겠지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이야기의 진짜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싶으면, 이야기의 종반이 속도감 있게 휘몰아 친다. 분량 조절을 잘 했다. 무리하지 않아서 더 좋았고, 작품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이런 깔끔함이 소네 케이스케의 이번 작품에서의 백미라고 평가한다.

기괴한 소재에도 묘하게 리얼리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코>라는 연작집을 뒤늦게 떠올려 본다.
잔혹한 동화나 우화, 은유 속에서도 기발한 시각으로 날카롭게 파고들던 작가의 패기에 감탄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완벽한 느와르, 완벽한 미스테리 소설, 신랄한 사회파 소설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작가의 개성, 매력,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같은 것을 거의 100%에 가깝게 내뿜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앞으로의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소네 케이스케다.
별 다섯에 별 넷.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착실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