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시월의 밤
로저 젤라즈니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9월에 했어야 하는 아주 소박한 일 중 하나는 어쓰 윈드 앤 퐈이어의 셉템버를 듣는 일이었다. 

그보다 더 기분이 좋았으려면 토키 아사코의 목소리로 들었어야 했는데, 여하튼 둘 다 못하고 9월이 지나갔다.

(9월이 셉템버 맞지? 갑자기 헷갈리는 영미 스릴러 편집자;;)

 

10월에는 노래가 아니었다. 노래라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효우~'로 시작하는 잊혀진 계절 밖에 생각이 안 나서... 그 노래는 왠지 사랑하기 부담되니까...

 

어쨌든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로저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 A Night in the Lonesome October를 읽는 일이었는데, 이마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하루 이틀 정도 지난 11월 초의 밤 또한 충분히 고독했고 어차피 할로윈 같은 거 우리나라 명절도 아니니까.

 

  

 

신들의 사회나 전도서를 위한 장미 같은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로저 젤라즈니 책이 맞아?'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로저 젤라즈니가 생전에 쓴 마지막 장편소설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게, 일단 동물들이 주인공인데다가 내용 또한 아기자기 해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사랑스럽다. 물론 작품 안에서 베일에 싸인 채 맞이하게 되는 보름달이 뜨는 할로윈의 거대한 의식에 이르기까지, 액션과 스릴, 미스테리적 요소가 딱 적절하게 믹스되어 있기 때문에 젤라즈니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박진감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만 캐릭터의 개성이 꽤나 괜찮고, 스토리의 세계관 또한 정말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멋지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작품의 재미가 떨어지니까 대충대충 얼버무리자면, 일단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인간과 동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녀와 퍼밀리어의 개념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관계다. 거대한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팀 구성으로 보인다만.

 

어쨌든인간 캐릭터들은 왠지 뭔가를 꼭 연상시키는 이름과 외모, 행동을 보여주는데 위대한 탐정은 셜록 홈즈, 칼을 잘 다루는 주인공의 주인(말이 왠지 이상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개'다.)은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다 캐릭터가 어디서 많이 본 애들이다. 궁금하면 역자 후기를 참고하던가.

 

독특한 주인들 만큼이나 그 졸개 동물들도 독특하다. 인간의 지능을 가졌고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만 동물의 본능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그것들은 진지한 대사에 걸맞지 않은 원초적 행동들로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은 사실 할로윈 밤에 이르기까지 동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확인하고, 살인 등의 변수를 추적해나가면서 의식의 장소와 승패의 여부를 계산해 나가는 게 주된 스토리인데, 우리의 동물 친구들은 정말 박수가 나올 정도로 멋진 활약을 보여준다. (너무 귀여워.)

 

영화 <케빈 인더 우즈>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좀 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살짝 가벼운 스토리지만 그리 많지 않은 분량과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에 의해 모든 것이 커버된다.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는 반전을 위한 변수들도 꽤 맘에 드는. 수작.

 

별 다섯에 별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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