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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할런 코벤의 신작 <용서할 수 없는> (Caught, 2010)

이번에도 평범한 가정에서 누군가 실종되고, 각지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거기엔 뭔가 악의로 가득차 있고, 알고보면 과거에 누군가 저지른 실수가 있고, 반전이 두번 세번 나오고! 그렇다. 전형적인 할런 코벤식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군더더기 없는 짜임새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이야기 소재들, 허튼 행동을 하지 않는 주인공과 매력적인 주변 캐릭터들. 정말 스탠드 얼론으로 끝내기에 너무나도 아까운 완성도라고 생각한다.
정작 재미면에서 스탠드 얼론보다 한 수 위로 친다는 시리즈물은 접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비채에서 꾸준히 소개해 주는 스탠드 얼론만 간간히 읽었었다. <단 한번의 시선>을 꽤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결백><아들의 방>에서도 항상 유사한 패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느낌을 받아서 어느샌가 할런 코벤의 작품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할런 코벤의 이야기들은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작가들이 자신의 아바타로 마초적인 사립탐정이나 거친 형사 등을 선택해서 시스템 안팎을 마음껏 누비는 이야기를 써낸다면, 할런 코벤은 언제나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리에게도 일어날 법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용서할 수 없는>은 인터넷 시대에 익명으로 행해지는 폭로, 특히 진위여부가 판별되지 않은 폭력적이며 무책임한 행동이 순식간에 확산되어 여론을 형성하고, 황색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개인의 신용이 몰락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타블로 사건을 비롯, XX녀 등의 마녀사냥과도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 대중들에게 그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났는지 또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이미 실추된 명예는 회복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억눌린 개인의 이런저런 감정들은 희생양이 생기면 그 틈으로 모두 집중되고 더 큰 균열을 만들고 이윽고 터져버린다. 그리고 또 더 큰 폭발을 위해 다른 곳을 향해 흐를 뿐이다. 거대한 메뚜기 떼의 모습으로...어쩌면, 현대 사회의 재앙일지도 모른다.
아동성애자로 낙인 찍혀 인생이 무너진 댄 머서와, 그를 몰락시킨 장본인인 방송인 웬디, 갑자기 사라져버린 소녀 헤일리의 가족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묘한 긴장감을 주고 받으면서 엇갈려 간다. 십대를 기르는 부모들의 스트레스 가득한 삶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들의 자녀들, 일류의 삶에서 점점 소외되어 가는 중산층 엘리트들의 과거들이 이 이야기가 보이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경고한다. 매력적인 언론인 웬디의 끈기와 책임감 넘치는 추적, 집중력이 독자를 압도해나가며, 수많은 반전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지탱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
무리한 반전이 아닌, 관련 인물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해 나갔다는 점 또한 이 책의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에게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구축한 이야기들에도 나름의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반전 하나하나가 즐거웠다.
할런 코벤은 미국 사회의 약점을 철저하게 파해치면서도 그것을 소설에 쓰기 위해 과장하지도 위장하지도 않는다. 또한 섣불리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 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병폐를 폭로하면서도 그것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고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어찌되었던 책을 읽는 독자는 저마다의 느낌과 결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색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할런 코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 걸 참는 순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원제인 Caught 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어판 제목인 <용서할 수 없는>은 참 괜찮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에게 '용서'라는 것의 의미를 묻는 이 책의 질문과도 맞아 떨어지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이 책이 내어놓는 대답에 대한 또 하나의 반전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꽤 재밌다. 과연 용서 받지 못할 자와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의 이야기에서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희생당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끼리의 희생과 구원을 세상은 축하해 줄것인가 비웃을 것인가. 아니면 무관심할 것인가.
이 어렵고 민감한 문제에 관해서도, 할런 코벤은 나름의 멋진 대답을 준비해 놓았다. 처음부터 흡입력과 속도감있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훌륭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내 나름대로 할런 코벤에게 주는 첫 별 다섯의 책이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확실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최신작을 읽는 일은 만족을 넘어선 짜릿함마저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