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힘 2 밀리언셀러 클럽 125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알아, 아단? 난 지옥이 존재하기를 바라지. 너 때문에."

 

 

 

 2006년  12월, 멕시코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4만 5천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피를 필요로 했음에도, 이 전쟁은 실패로 돌아가기 직전이다. 사람들은 마약 카르텔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피해야 할 정도로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으며, 실제로 그들의 반대편에 서는 것으로 간주되는 언론인, 경찰, 심지어 외국의 네티즌까지도 이들에 의해 희생당했다. 이미 카르텔의 손은 정부의 고위층부터 말단 경찰, 민간인들에게 뻗어 있으며 전쟁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이가 위험에서 벗어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카르텔의 편에 서고 있는 현실이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2006년의 마약과의 전쟁 이전의 멕시코, 서서히 곪아가는 마약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냉전시대의 이념전쟁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남미에 암암리에 군사적인 지원을 한 미국과 NAFTA 발효로 인해 시작되는 경제난의 덕을 보며 세계 제일의 마약 중개상으로 발전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 그 시작과 진화를 소설 속에 녹여냈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은 실제의 사건이라 보기에는 드라마틱하고,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실제인물들과 혹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등장인물들이 굵직굵직한 사건의 주체가 되고 혹은 휘말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 이야기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트는 생각했다.

...

그들이 서로를 파괴하게 만들겠어.

 

 <개의 힘>은 '국경의 왕' 이라 불리는 마약수사요원 '아트 켈러'와 '하늘의 군주' 라 불리며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지배하는 마양왕 '아단 바레라'의 30년에 걸친 악연을 통해 멕시코의 피로 피를 씻는 처절한 싸움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가장 친한 친구에서 가장 증오하는 적이 되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통칭 '티오'라고 불리우는 바레라 가문의 우두머리 '미겔 앙헬 바레라'다. 기존의 아편을 지배하던 라이벌을 마약소탕작전을 통해 제거하기 위해 아트 켈러를 이용하고 마약카르텔을 조직하여 콜롬비아의 코카인을 중개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들의 아이들의 마음 속 '개의 힘'을 끌어내고야 만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개의 힘' 이란 단어는 성경의 시편에서 나오는 말로, 인간 본성의 사악함 또는 인간이 빠져들기 쉬운 광기의 세력을 뜻한다. 신의 길에서 벗어난 인간이 노출되기 가장 쉬운 것. 생명을 빼앗는 칼과 나를 위협하는 사자의 입, 들소의 뿔처럼 호시탐탐 인간을 넘보는 개의 세력.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魔'에 씌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용되었음을 알고 자신의 커리어와 가족을 포기하면서까지 마약 카르텔에 도전하는 성난 꼭두각시 '아트 켈러'와 왜 그렇게까지 마약사업에 매달리는지 동기조차 불분명한 마약왕 '아단 바레라'의 싸움은 '개의 힘'이라는 말이 없다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수많은 잔인한 사건들은 그 이유에서 더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능력이 없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의지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 혹은 지금의 멕시코가 처한 현실은 국제정세와 각 나라의 부패한 정부들이 더욱 악화시킨 면이 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수많은 돈과 무기를 중남미에 고스란히 갖다바친 미국과 그를 토대로 멕시코를 장악해 나가는 카르텔, 그와 결탁한 정부들은 서로 얽히고 섥혀 결국에는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서로를 옭아맨다. 그 돈과 마약, 무기가 만들어낸 거대한 구덩이는 하나의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의 피와 생명을 빨아들인다.

 

 <개의 힘>은 현실의 많은 부분에서 신세를 진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희생자를 훌쩍 넘어서는 가장 비극적인 장소의 가장 참혹한 전쟁인 '멕시코 마약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저널리즘이 아닌 소설로 머물수 있는 이유는 바로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양대 축이 되는 아트와 아단을 제외하고 주요 등장인물인 티오, 노라, 후안, 칼란 등의 인물들의 말과 생각, 행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말과 행동이 익히 알려진 사건들의 색을 바꾸고 그 이면을 재해석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현실의 많은 부분을 토대로 새로운 경지의 재미를 가진 세공품을 독자에게 선물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돈 윈슬로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완급조절과 적재적소에서 터져주는 폭발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며 절대적인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실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닐 캐리 시리즈로 처음 접했던 돈 윈슬로와 <개의 힘>을 쓴 돈 윈슬로가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이 책은 유머러스함과는 거리가 멀고 철저하게 처절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무엇이 인기의 안전가도를 달리고 있던 작가의 펜을 쉬게하고 6년 동안이나 취재와 집필에 매달리게 했던 것일까. 돈 윈슬로는 멕시코의 참혹한 전쟁에서 인간이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두려움과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1천 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마약에 찌들어 비참하게 무너져 가는 인간은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마약을 다루고 있지만 그 초점이 마약 중독자에 대한 것, 마약의 해로움에 대한 것에 닿아있지 않다. 사업이란 이름으로 마약을 미국에 운반하고 돈과 권력을 손에 넣은 자와 그를 무너뜨리려는 자가 서로의 목덜미만을 물어뜯기 위해 으르렁 대면서 그 화를 삭히지 못해 자신의 살점을 쥐어 뜯는 이야기이다. 돈 윈슬로는 구구절절히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단 한번의 연민도 허락하지 않는다. 위선과 배신, 그에 대한 분노로 그들이 부서져 가는 모습을 합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의 힘'처럼 에필로그가 긴 소설이 있을까. 문득 생각을 한다.

 이 책이 끝나는 지점인 2003년 이후, 아단 바레라가 없는 멕시코는 이제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지옥이 되어 버렸으니까.

 시편의 화자가 필사적으로 기도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신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신조차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러나 현실의 씁쓸함과는 별개로, 이 책은 정말 압도적으로 재미있다. 끝나지 않는 전쟁이 불멸의 스릴러를 낳았다.

 

 별 다섯이라는 한계가 무색한, 별 다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