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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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어차피 되는대로 갈 수밖에 없다. 흐름을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온다 리쿠라는 이름. 내가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작가가 가진 이름이다.

 몽환적인 스토리를 쓴다는 말을 왠지 애매모호하고 어중간한 재미를 주는 작가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서평들에서 온다 리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에만 주목한 채, 나는 그 사람들이 책에 대해 느꼈던 재미나 매력 같은 것을 캐치해 내지 못했던거다.

 

 온다 리쿠의 <불연속 세계>와 사자키 유의 <외침과 기도>를 비교할 수 밖에 없는 내 얕은 독서량이 부끄럽지만, 두 작품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진 리얼 월드의 세계관에 판타지를 끼워 넣고, 다양하고 조금은 장황한 이야기 속에서 역으로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가는 식의 이야기란 점에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사자키 유의 <외침과 기도>는 각 나라의 풍광이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는 것이며, <불연속 세계>는 벚꽃놀이, 노래, 영화, 사진, 열차여행이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외침과 기도>가 이른바 내 귀에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누군가의 외침과 누군가를 위한 기도에 대한 이야기라면 <불연속의 세계>는 틈이 없이 이어져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내가 잠시 눈을 감았을 때' 벌어지는 일 같다는 소리다.

 

 써놓고도 참 애매한 소리이지만...

 

 내가 잠을 자려고 잠시 눈을 붙였을 때, 혹은 다른 어떤 감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빛을 차단했을 때는 그때 잠시 세상의 흐름을 건너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나아가 내가 깨어있을 때라도 눈을 깜박거리는 그 찰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나를 둘러싸고 있지만 내가 절대로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도 하다. 

 

 단순한 옴니버스 식의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고, 이야기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논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든 이야기들을 묶는 테마와 풀어나가는 방식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대놓고 호러가 아니어서 방심했지만 이 책은 간혹 오싹한 느낌을 받게 하는 통에 아주 혼났다. 서평의 방향이 자꾸 '어둠', 내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의 이야기, 내 등 뒤에 흐르는 알 수 없는 흐름에 관한 쪽으로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독서실에서 이 작품의 세번째 단편 '환영 시네마'를 읽다가 '빨간 개'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정말로 섬뜩한 기분이 들어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웠다.

 

 글쎄, 온다 리쿠의 다른 책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불연속 세계>에서의 온다 리쿠는 도를 넘어선 환상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 분위기가 독특하고 어떤 경계에 걸쳐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불안해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꽤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게 결론.

 

별 다섯에 별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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