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브레이커 -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쳐 자신의 길을 찾는 소년의 이야기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와인드업 걸>이 한국에 꽤 빨리 소개되었다 싶어 이게 왠 횡재냐 했는데 그의 또 다른 작품 <십 브레이커>까지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호강하는 기분이다. 파올로 바치갈루피는 <와인드업 걸>로 SF 상의 양대 산맥인 휴고상과 네뷸러 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중의 한명으로 떠올랐다. <와인드업 걸>에서 꽤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어둡고 답답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던터라 그가 쓴  Young Adult Fiction은 어떤 모습일까 내심 궁금했다.

 

 책장을 펼쳤을 때 꽤 익숙한 설정이 눈에 들어왔다. 연료고갈, 다국적 기업으로 인한 암흑기,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신인류의 등장 등은 <와인드업 걸>의 그것과 꽤 닮아 있다. 아니 <와인드업 걸>이 태국이라는 특정한 지역의 한정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분명 <십 브레이커>의 모습은 태국 바깥의 세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쩌면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세계관은 공유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변해버린 지구와 세계의 질서.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생각하면 꽤 근사하다.

 

 

 

 

 

 

 

 

 Boy meets girl.

 소년이 소녀를 만나 일상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게 된다는 스토리는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등 수많은 곳에서 자주 사용하는 소재고 인기도 많다. <십 브레이커>에서도 역시 어린애답지 않은 비범함을 지녔지만 세상의 외진 곳 어두운 구석에서 외롭게 자신의 작은 촛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행운으로 삼고 살아야하는 주인공 '네일러'가 등장한다. 문명이 무너진 곳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친아버지에게조차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 네일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은 커녕 하루하루 생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던 중 네일러는 난파선을 뒤지다가 '니타'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네일러가 사는 곳과는 차원이 다른 곳에서 부유하게 자란 니타는 기업내 세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다. 네일러는 니타를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자신이 사는 법칙을 거스르고 자신의 운명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십 브레이커>는 암울한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기어오르는 소년의 이야기를 제대로 치장해냈다. 방해가 된다면 자신의 아들마저도 없애려드는 네일러의 아버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반인 '툴'이 긴장감을 조성하고 바다에 잠긴 도시에서의 해상교전장면 등 액션 또한 박진감이 넘친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개성 넘치는 세계관을 확실하게 구축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나서 꽤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소년 네일러의 앞으로의 모험이 궁금해져서 그렇고, 반인 '툴'의 과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조금 긍정적인 아쉬움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알아보니 후속작은 '툴'과 그가 만난 새로운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십 브레이커>를 단일 작품이 아닌 시리즈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반갑다.

 

 

 그러고보면 파올로 바치갈루피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서 꽤 수동적인 인물들로 묘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드업 걸>에서 에미코는 어떤 연민을 자아내는 대상이기에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십 브레이커>에서 럭키걸 '니타'는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냈는지 의문이 든다. 소년이 소녀를 만났을 때, 소녀 또한 소년을 만나 변화하고 성장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지나친 오지랖일까.

 

 아, 마지막으로... 작가의 세계관에서 '일본'이란 나라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 게, 유전자 조작 생물이나 로봇공학 등에 의해 탄생하는 인조인간 등은 거의 대부분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교육받는다는 설정이다. 애정이 담겼다기엔 그 창조물들의 삶이 너무 비참하고, 부정적이라고만 보기에 그 수준이 너무 높기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고 좋아하다가,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도 특유의 어두움이 묻어나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는 어느 쪽 사람일까. 그저 까맣게 칠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일까. 아니면 별이 빛날 수 있도록 밤을 까맣게 물들이는 상냥한 작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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