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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생후 6개월 된 딸을 잃은 과거가 있는 마흔살의 여인 파스칼린.
헤어진 전 남편에 대한 사랑과 남편이 새로 꾸릴 가정에 대한 질투를 참고 견디며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그 단단한 껍질이 무색하게도 쉽게 마음을 침식당합니다.
연쇄살인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 중 한곳이 그녀가 새로 이사한 곳이었고, 그 과거를 알게 된 순간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그 사건에 빠져듭니다. 죽은 여인들과 그녀의 어머니들에 대해 온통 마음이 빼앗긴 그녀는 서서히 그 모든 죽음들을 자신의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도록 허락합니다.
짧은 책입니다. 그런데 185쪽짜리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 파스칼린의 여린 감수성이 그녀 스스로를 해체하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는 일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거든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언제나 무겁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은 위태로운 여자를 보는 것은 더더욱 그렇고요.
TV를 켜놓고 이 책을 읽었었는데, 우연히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해주더군요. 양쪽을 번갈아가며 보고 또 읽었는데 완전히 다른 것 같던 두 여인이 겹쳐지는 순간, 소름끼치도록 감정이 이입되는 걸 경험했습니다. 스스로의 지겨움마저 견디고 품고 살았던 그녀들을 폭발시키는 부분을 동시에 맞이했거든요.

사람이 살해당한 집에서 보통 사람이 느낄 찝찝함을 증폭시켜 자신의 고통을 해방시켜 버리는 열쇠로 삼는 파스칼린의 모습과 외딴 섬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단계에서 폭주하는 야수로 변신하는 김복남의 모습은 꽤 닮았습니다.
덕분에 다음 읽을 책은 조금 밝고, 지금의 감정을 털어낼 책을 골라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