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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수장룡의 날
이누이 로쿠로 지음, 김윤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여름에 리조트 해안에서 시모어 글래스라는 남자가 군대에서 돌아오다가 우연히 시빌이라는 어린 여자애를 만나는데, 그 애와 바나나피시라는 상상 속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 하게 돼. 바나나피시는 바닷속에 있는 바나나가 가득 든 구멍을 향해 헤엄쳐 가서는 그 안에 들어가 미친 듯이 바나나를 먹어치워. 뚱뚱해진 바나나피시는 두 번 다시 구멍에서 못나와. 시모어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하는 거야.
그런데 시빌은 이렇게 말해."방금 한마리를 봤어요." 바로 옆을 헤엄쳐 갔다는 거야, 바나나피시가. 시빌이 한 말은 아마 아이가 괜히 아는 척하는, 그런 거야. 보통은 웃고 말텐데, 시모어는 깜짝 놀란 모습으로 이렇게 중얼거려. "그럴리가."
그 뒤, 시모어는 호텔 방으로 돌아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서 죽어.
이것과 같은 오르트기스 자동권총으로 말이지. 이 자살 묘사는 당돌해서 해석이 많아.
내 생각은 이래. 시모어는 이게 정말 현실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거야."
꿈과 현실의 층층을 오가다 갇혀버린 곳, 림보. 그 림보를 바나나피시가 헤엄쳐 들어간 박스라고 생각한다면? 그 꿈이 주는 달콤한 독약을 먹고 살이 쪄버린 물고기가 어쩌면 나라면 하는 생각.
압도적인 영상미만큼이나 내게 충격을 주었던 영화 <인셉션>의 한 부분은 바로, 정신세계의 가장 밑바닥에서 현실세계로 뛰어 오르는 철로의 자살 장면이었다. J.D 셀린저의 단편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에서 시모어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당기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던 것을, 이 책 <완전한 수장룡의 날>을 읽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감명깊게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존 레넌을 살해한 마크 챔먼에게 영감을 준 책으로도 유명한데, 바나나피시에 대한 글까지 더한다면 왠지 읽는 이의 마음과 정신을 흐트러트릴 수도 있는 그런 책이라는 게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얼마 전 읽었던 <클라인의 항아리>와 약간 비슷한 소재로 볼 수 있는 것은 '센싱'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살을 시도한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의 마음에 접속하는 것이 사건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어떤 느낌만 비슷할 뿐 이 작품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꿈을 통해 동생을, 스스로를, 그녀의 가족을, 그녀의 과거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대에 걸쳐 전해지는 좌절과 고통의 유전자를 어떻게 거부 또는 받아들일지 독자 또한 그녀의 마음에 깊이 침잠해서 지켜보게 된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에서 '바나나피시'가 탐욕스럽고 결국 바나나열병에 걸려 죽는 비참한 존재라고 한다면,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의 수장룡은 어떤 희망이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며 돌아가야 할 고향과도 같은 따뜻한 존재이다.
이 책의 결말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기억과 현실이 뒤섞여 혼탁한 상태의 흙탕물 같던 스토리가 정리가 될 때.
영리한 독자라면 이미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쓴 작가나 먼저 읽은 사람 모두 그 순간.
당신을 칭찬하기 보다는 당신의 가라앉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이 책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할 거란 생각이 든다.
홀로 된다는 것.
자신의 전부와도 같던 일이 끝난다는 것.
그리고 꿈과 죽음의 모호한 갈림길에서 어디서 어떻게 삶을 끼워 넣어야 하는지.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3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책이지만,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아 참, 이책은. 그렇게 안 생겼지만 2011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