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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에 '낚여' 창룡전이라는 소설을 잡았던 것이 중학생 때였나, '국민학교 6학년' 때였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왠지 너무나 강한 4형제(였지 아마? 3형제였나.)한테 상대도 안되고 당하는 악당들이 불쌍해서 읽다 팽개친 것이 5권째였나, 6권째였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첫번째 대학생활에서 나를 아껴주었던 동아리 형은 '은하영웅전설'을 인생의 지침서라며 홍보를 했지만, 키르히 하이스가 죽는 부분까지 읽다 접었었으니 1권도 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소리다.

얼마 전 은하영웅전설이 '기적적으로' 재간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구해다녔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팔아 쳐먹었는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1권까지 읽다 말았던 이유는 당시에는 소설책을 읽기 귀찮았기 때문에 그랬을 뿐 (하루에 만화책은 30권씩 읽었었던 것 같지만) 관심은 있었기에, 돈 없는 나조차도 저 뽀대나는 은영전 전집은 백수 생활만 벗어나면 반드시 장만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비채에서 생소한 책이 한 권 나왔었는데, 바로 다름 아닌 '은하영웅전설''창룡전'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책이다. 은하영웅전설과 아루스란 전기 집필 사이에 쓴 작품이라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표지가 꽤 멋드러진다. (최근의 비채 표지는 조금 엉망인데, 아마도 클라인의 항아리와 일곱도시 이야기까지가 이전 표지담당자의 작품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이 책은 SF다. 지구가 한번 '대전도' (지축이 90도 뒤바뀜)를 겪은 후 대규모 리셋되고, 월면기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다시 한번 문명을 번영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일곱 도시인 것이다. 월면인은 지구인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500미터 이상 고도의 비행체는 요격시키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만드는데, 이 때문에 일곱 도시의 전투는 2차 세계대전 정도의 기술력을 사용하여 벌어지게 된다.
다나카 요시키가 이렇게 제한한 설정 덕분에 일곱 도시의 전쟁들은 상한선이 존재하는 기술력 탓에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게 되어 장군 하나하나의 역량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크게 좌우되게 된다. 좋게 말하면 '삼국지'나 '전국시대'의 이야기 팬들이나 '2차 세계대전' 오타쿠 들에게는 '은하영웅전설'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이지만, 사실 작가가 각 나라의 주연급 장군들의 이야기를 풀고 싶었기에 무작정 설정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등장인물들은 근대전의 장군들을 연상시키지만서도, 7개의 도시라는 점에서 이 설정은 중국의 전국 칠웅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진나라에 의한 통일이 있기 전까지 이 일곱나라는 묘한 균형 속에서 피 터지는 외교와 전쟁을 벌였는데, 다섯도 아니고 여섯도 아닌 일곱을 설정한 것은 이 때의 중국무대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 한다. (만화 '킹덤'을 읽는 독자라면 더더욱)

다나카 요시키의 <일곱 도시 이야기>는 세련되고 유려한 글솜씨를 찾아볼 수는 없는 것 같다. 대신 오락성과 가독성을 갖추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글빨로 독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재주가 일품이다.
간단한 세계관 설정에 과거와 현재의 실제 세계 정세, 정치인, 인물들을 교묘하게 섞어 놓고 우리 사회에 대한 어떤 비판도 담겨 있는 것 같고... 어떤 의미에서 '일본과 일본인'이 어떤 그릇된 행동을 했는지 보여준다는 생각도 조금 받았고... (모르겠다.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니니... 다나카 요시키가 의외로 극우 꼴통일 수도 있는 일이고...)
어쨌든, 다나카 요시키가 오락소설의 정점에 군림할 때의 작품이기 때문에, 은하영웅전설의 팬이라면 그 외전격으로라도 꼭 구입해야할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은하영웅전설의 재간에 맞춰 다나카 요시키가 어떤 식의 재미를 주는 작가인지 미리 알아 보는 데에도 굉장히 좋은 교과서라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책 자체의 재미도 훌륭하다. 책 소장에 있어 완성도보다 훌륭한 것은 설명할 수 없는 '애착'이란 거. 장르 소설 팬들이라면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