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의 항아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 끝내면 돼."

 

그래야겠다.

 

 

 2011년, 지금은 흔해 빠진 가상현실에 대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의 몰입감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하도 많이' 장르소설, 영화, 단막극에서 갖고 놀았던 소재인데도 <클라인의 항아리>는 몇가지의 허술함과 촌스러움을 훌륭히 극복하고 있다. 1989년에 나온 책이니 벌써 22년 전 이야기이다. 이때부터 도쿠야마 준이치, 이노우에 이즈미 콤비- 오카지마 후타리-는 겉과 속이 붙어버린 기묘한 항아리에 담긴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좀 더 많은 독서를 했다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먼저 시도한 SF 소설 쪽을 디벼볼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의 내공은 택도 없기에. 기껏 생각난다는 것은 '엑시스텐즈'나 '트론 레거시' '매트릭스' 같은 유명한 영화였다. 아 물론 '인셉션' 도 있겠다.

 

 사실 1995년 쫄딱 망했던 닌텐도의 '버츄얼 보이'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1989년 나온 <클라인의 항아리>는 이론도 뭣도 아닌 그저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한 게임기이다. 책에서 '테라바이트'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용량으로 언급되는 걸 보면 야동 모으는 내 친구 백 모군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다만, 아직까지도 현실과 구분이 가질 않는 영상, 게임 등은 그 계통 사람들의 궁극의 꿈일 것이다. 가상의 하늘을 향해 세우는 '바벨의 탑'은 아직도 포기를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 차근차근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 이 책을 쓴 작가 '이노우에 유메히토'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다. 누군가 빨고 핥는 글에 구해 읽은 <메두사>가 그다지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머리 아프게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났을 뿐, 덤불 근처만 때려대는 작가의 스타일이 지루했다고 기억한다.

 

 역자님 후기에서, 또 항간의 평가라고 하는 것들에서 도쿠야마의 역할이란 것이 꽤 부정적이었던 것처럼 여겨졌는데, 나는 조금 의견이 다르다. 도쿠야마가 제시한 아이디어 - 역자 후기에서는 액션, 모략, 살인사건 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 가 없었다면 이 책은 철학소설도 공포도 SF도 뭣도 아닌 그냥 '실험적 소설'로만 남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콤비를 해체한 이후의 이노우에 유메히토의 책이 얼마 소개되지 않아 섣부른 감도 있지만, 적어도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든 공신은 다름아닌 '다른쪽의 혼자' 이다.

 

 매년마다 꼭 챙겨보는 일본 드라마 시리즈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에는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가 꽤 많이 있고, 또 나름의 딜레마들과 반전을 잘 살린 수작들이다. <클라인의 항아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과 비슷한 류의 이야기에는 분명하지만 아직도 신선함을 갖고 있고 본래의 장점이 남아 있다. 뭐 당연할 것이다. 후속주자들은 모방작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비켜갔을테니.

 

 꽤 잘빠진 표지와 적당한 분량, 괜찮은 이야기에 훌륭한 몰입감.

 

 클라인의 항아리는 별 다섯에 별 넷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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