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미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나비가 거미줄에 걸렸다.
 

 거미가 나비에게 다가가 웃었다.

 

 나비는 다시 고치에 갇혔다.

 

 고치가 열리고 나비는 눈을 떴다.

 

 거미가 나비에게 다가와 웃었다.

 

 나비가 거미에게 웃었다.

 

 거미가 얼굴을 찡그렸다.

 

 나비는 거미에게 웃었다.

 

 거미가 그걸보고 웃었다.

 

 

 

 이런 수준 떨어지는 글이 실제로 책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긁적여 본 마더구스? 같은 가사입니다. 살짝 머리가 어지러운 상황에 몰린 독자가 혼란 중에 쓴 거라는 거...

 

 티에리 종케라는 작가도, 알모도바르 감독도 사실 제게는 생소한 사람들입니다. 그게 부끄럽진 않았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책을 읽고 평할 수 있겠구나, 다행이다. 라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책 또한 170쪽 남짓의 꽤 얇은 책이어서 부담도 었었구요. 망설임없이 책을 손에 들고 아이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카페 구석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크게 성공한 성형외과 의사 리샤르와 그가 감금한 이브라는 여인, 도둑 알렉스와 사라진 그의 파트너 뱅상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의사 리샤르는 미움인지 사랑인지 모를 애매한 감정으로 이브를 파괴하려다가도 품에 안고 이브는 의아할 정도로 리샤르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이야기가 복수에 대한 이야기 라는 것이라면 도대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리샤르의 복수가 계속될 것인지, 이브의 반격이 시작될 것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우리나라의 독자들이라면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계무대에서 각광받은 박찬욱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잔혹한 세상의 피부를 벗겨내어 무방비 상태의 속살을 드러내 조금 역겹게 느끼게 하는 과감한 스토리. 이제 이쯤에서 그만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턱을 움켜쥐며 강제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잔인함.

 

 얇고 부담없는 분량인만큼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가 송곳처럼 비집고 들어왔다가 나가버립니다. 눈치채지 못한 구멍으로 이런 저런 생각들이 새어나가고 들어 옵니다. 

 

 때때로 장르소설에서 통쾌함과 짜릿함을 얻길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그로테스크하게 뒤틀린 세상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 보는 것을 즐겨하는, 조금은 어두운 독자에게 <독거미>는 분명히 섹시하게 느껴지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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