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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여자 주인공을 전면으로 내세운 기리노 나쓰오의 하드보일드 '무라노 미로' 시리즈.
그 시리즈를 거슬러 올라간 곳에 바로 무라노 미로의 아버지 '무라노 젠조'의 젊은 시절을 그린 책 <물의 잠 재의 꿈>이 누군가 깨워주길 기다리고 있다.
"미로 시리즈도 좋았다. 하지만..." 무라노 미로의 이야기도 충분히 묵직한 맛과 어둠이 엉겨붙는 분위기가 일품이었지만 어쩐지 그의 아버지 무라젠의 이야기야말로 기리노 나쓰오식 하드보일드에 더 잘 맞는 옷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평범한 독자의 눈으로 볼 때는 남자 주인공의 마음 움직임이 훨씬 와닿게 되는 것이다. 야구로 치자면 깔끔하고 세련된 맛은 떨어지지만 무브먼트가 지저분하고 공자체가 무겁게 미트에 꽂히는 느낌이랄까. 취향의 탓이겠지만.
1960년대의 일본은 패전 이후 서양의 문물을 무분별하게, 특유의 분방함과 믹스하여 무섭게 빨아들이던 일종의 혼란기라고 보면 될까. 또 하나의 전쟁과 독재시절을 거치면서 다소 조용했던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일본의 책들은 조금 화려하다는 인상 또한 받는다.
물론 주인공인 무라노 젠조의 직업이 일단은 기자 '특종꾼'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생활보다는 조금 특이한 면면들과 접할 확률이 많긴 하겠지만, 이 작품을 비추어 일본의 그 시절을 살펴본다면 계속해서 6-70년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생산해낼 만큼 낭만적이고 멋진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탄마 '소카 지로'로 인해 경찰들에게는 비상이 걸리고, 시대를 풍미했던 소위 '특종꾼'들의 시대가 마감되려 하는 상황에서 거취를 고민하는 무라노 젠조. 조카에게 잔소리를 하기 위해 찾아간 난잡한 상류층의 놀이터에서 약에 찌든 소녀 '다키'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이상하게 꼬여간다. 소녀를 도와준 후 시체로 발견된 소녀 덕에 살인 용의자로 몰리면서, 기자 특유의 호기심과 승부근성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실, 하드보일드 치고 사람을 찌릿찌릿하게 하는 대사는 많지 않다. 기리노 나쓰오식은 특유의 분위기와 섬세함이 어우려져서 독자에게 감겨오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무라노 젠조라는 인물의 무뚝뚝하면서도 섬세한면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되어서 <물의 잠 재의 꿈>이 더 근사하다고 여겨졌다.
어떻게 무라노 미로와 무라노 젠조가 부녀관계가 되었는지 그 연결점으로서의 소설로만 생각했는데, 그런 묘미 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의 일본을 잘 살려 아버지의 젊은 시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의 매력을 꽤나 폼나게 보여준 멋진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