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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내가 제일 무서워한 게 뭔지알아?" 내가 물었다.
"뭔데?"
"무고한 의뢰인을 못알아보는 것. 그런 자가 나타났을 때 몰라볼지도 모른다는 거였어. 유죄나 무죄 애기가 아니야. 말 그대로 무고를 말하는 거야. 무고한 의뢰인."
매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무서워해야 할 건 따로 있었어."
"그게 뭐야?"
"악마. 악 그 자체."
(중략)
"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내가 무서워한 건 결국 무고한 고객이 아니라 완전히 그 양극에 있는 작자였어."
마이클 코넬리와의 첫 만남은 꽤 오래 전 일이다. 그의 책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와 '시인'은 내가 스릴러에 관심을 가지면서 일찌감치 구입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과 그 위에 쌓인 책들 덕분에 이제야 읽게 되었지만 이 작품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한결 같았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이런 '저자세'는 앞으로 마이클 코넬리의 책을 읽기 전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마이클 코넬리야말로 내가 할런 코벤에게 느낀 배신감과 제프리 디버에게 느낀 서운함 대신 짜릿함을 안겨준, '거장' 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이클 할러, '미키 할러'는 여타 다른 스릴러의 주인공과는 살짝 느낌이 다르다. 스스로의 정의에 따라 악인을 처단하는 영웅도 아닐 뿐더러 범죄를 몰고 다니는 악당도 아닌, 사법체계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과 의뢰인의 이익을 챙기는 '평범한 속물변호사'다. 그는 돈만 지불한다면 그 누구라도 변호할 자세가 되어 있으며, 돈을 더 뽑아내기 위해 교활한 수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명품정장을 입고, 운전기사가 딸린 '링컨'을 몇대씩 굴리면서 헐리우드가 내려다 보이는 집에 사는 남자는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더 낯설고 정붙일 구석이 없어보이기에 도리어 섹시하다. 하지만 말끔하고 냉정하게 보이는 그에게도 전처와 딸에 대한 사랑이 있고, 망가진 삶을 살아가는 창녀에 대한 연민이 있고, 자신의 실수에 대한 죄책감이 존재한다. 그 부분은 의외로 크며 그를 옭아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키 할러 자신을 쓰러지지 않게 지탱하는 마지막 인간다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링컨 차'에서 마이클 코넬리가 만들어 낸 이야기는 명품 정장처럼 말끔하고 잘 빠진 차체처럼 매끈하다. 내면의 고뇌와 외부의 적이 더해지면서 서서히 끝없는 늪으로 가라앉는 미키 할러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기가 막히게 처리하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이 남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법체계와 그를 둘러싼 법정. 그 사이사이 갈라진 틈 사이까지 능수능란하게 휘두르는 마이클 코넬리와 그의 아바타 '미키 할러'. 그들에게 중요하진 않겠지만, 나와의 첫 단추 또한 성공적으로 끼웠다고 볼 수 있겠지 싶다.
악인의 활약이 의외로 미비해서 아쉽긴 하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에 미키 할러의 철저한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모든 걸 잊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