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의 장편은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들었다. 실제로 예전에 읽었던 그리폰 북스의 '높은 성의 사나이' 또한 그렇게 뛰어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편들 또한 영화를 먼저 접한 후 읽는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정도로 필립 k.딕이 가진 명성과 작품의 재미 사이의 괴리는 꽤 크게 다가온다. 이 작품 죽음의 미로 또한 난해하고 곤혹스러운 스토리, 불친절한 세계관이 여타 다른 SF보다 훨씬 어렵게 느끼게 하고 있다. 델맥-O 행성이라는 클로즈드 서클 안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식의 인물간 긴장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보여주지만, 그 '닫힌 계'가 너무도 기괴하고 삶과 죽음의 형태가 괴상한 신학과 연계되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혼란스럽다. 또 돌아다니는 인공 생물들과 '건물' 들 또한 상식 밖의 세계에나 존재할 법한 이질적인 형태와 행동양상을 보여준다. 각 장에 붙은 소제목들은 각 장의 내용과 전혀 상이할 뿐만 아니라, 언급된 인물과의 연관성이 아예 없어보이는 제목 또한 존재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까지도 유추가 가능할 뿐 확신을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다. 번역 또한 꽤 어려운 편으로, 아예 필립 K. 딕을 잘 모르거나 어설피 알고 있을 SF입문자나, 청소년들은 책 읽기에 꽤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번역가 '김상훈'님이 단어 선택과 신조어 표기에 있어서 그 창의성이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단어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꽤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필립 딕 전작선집 책의 질을 감안한다면 그런 건 문제가 되질 않을 것이다. 책의 퀄리티와 번역의 수준이 겨냥하는 독자층이 SF 골수팬부터 어느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춘 장르팬들일거란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SF출판물들이 다소 높은 가격과 그에 못 미치는 책의 만듦새로 구입하는 입장에서 '난 호구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필립 딕 작품집은 그야말로 눈이 튀어나오게 멋진 '선물'이다. 작품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렵고 불친절한 이 책이 재미가 없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자신이 없어진다. 대중성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괴하고 난해한 소재들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왜 그의 작품들이 뛰어난 영화의 원작이 되고, 후세 많은 작가들의 꿈의 원형과 맞닿아 있는지 독자로서 이해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 도가 지나친 상상력의 크기에 점점 매료되고 깔끔하게 잘 빠지지 않고 젤라틴 덩어리처럼 끈적끈적한 느낌의 이야기에 슬슬 적응이 되고 나면 '필립 K. 딕'은 어느새 3대 어쩌고 하는 SF거장보다도 더 아끼게 되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죽음의 미로는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친숙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온 이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비슷한 소재로 이야기들을 비틀고 배배 꼬아 놓았는지 실감이 날 정도로. 그럼에도 독특함을 인정받는다는 거 꽤 멋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