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1. 소라게

 



 

 

" 태운다."

 하루야가 라이터를 켜더니 불길 끝을 소라게에게 댔다. 소라게는 배를 흔들고 다리를 버둥대며 입에서 거품을 부걱부걱 뿜었다. 그날 아침에 먹은 전갱이 같은 냄새가 서로 바싹 갖다 댄 얼굴 사이로 피어올라 왔다. 도중부터 점토에서 녹아나온 기름 냄새가 더 강해졌다. 푸쉭, 하고 회색 배가 터졌을 때만 두 사람은 함께 얼굴을 약간 뒤로 물렸다. (p128)

 

 어렸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일들이 지금에 와서 떠올려 보면 나도 모르게 섬뜩 할 때가 있다. 개미집을 막대기로 휘젓다가 물을 한 바가지 부어본다던지,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 기어가는 걸 보고 있었다던지 했던 기억...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려보고 나무 끝에 매달린 고치를 찢어 그 안의 애벌레를 툭툭 건드려 보던 기억...이 책의 주인공 하루야와 신이치가 놀이 또는 주술처럼 소라게를 태우는 장면은 그런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불쌍하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 '재미'를 쫒느라 그랬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이 책의 아이들처럼 행동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 떠올린 내 모습이 섬뜩한 것 이상으로 하루야와 신이치를 지켜보는 일은 매우 기분 나쁜 일이었다. 악의 없는 순수한 악(惡)을 인정해야 할 것 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주인공 신이치와 하루야는 자신들이 생명을 쥐고 흔드는 약한 존재, '소라게'처럼 보잘 것 없는 껍데기를 등에 이고 숨었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스스로를 껍데기에 가두며 흡사 부화를 기다리는 알처럼 잔뜩 웅크린 삶. 그대로 성숙해 알을 깨고 나오면 좋으련만... 어떤 불길이 그 바깥쪽을 태우기 시작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스트레스가 소년들을 껍데기 밖으로 뛰쳐나오게 만들고 만다.

 

2. 달



 

달밤의 게는 글렀어. 먹어도 전혀 맛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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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말이다. 위에서 내리비쳐서......바다 속에 게의 그림자가 생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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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그 그림자가 너무나 추해서...... 게는 무서운 나머지 몸을 움츠리지...... 그러니까 달밤의 게는 말이야......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는 진절머리 날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작가다. 그 글이 사람의 머리 속에 파고 들어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을 때엔 정말로 어떤 '저주'에 사로 잡힌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책 <달과 게> 에서도 초등학생의 순수한 마음이 검게 물들어 가는 과정을 독자에 대한 자비없이 써내려 가는데, 깊고 검은 물 속을 허우적 거리는 팔과 다리에 길고 검은 여자의 머리카락이 자꾸 감기는 기분이 연상되 기분이 찝찝하다. 순수한 질투, 순수한 악의, 부서져 내리는 순수... 누군가의 재능으로는 아름답게 꾸며질 순수가 미치오 슈스케의 펜 끝에서는 언제나 잉크처럼 검은 색으로 물든다. 그게 어찌나 신경질 났던지 신이치가 받는 스트레스 이상으로 나는 작가에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나오키 상인지 뭔지 난 이 책 또한 재밌게 읽었지만 즐겁지 않았고, 애착이 가지 않는다 중간에 선언할 정도로.

 

 하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달과 게>에서 비로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많은 작가들이 이르고 싶어하는 곳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중후반까지 부서지기 직전까지 일그러뜨리던 이야기가 달이 뜨는 밤 갈등의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여러가지 상징들과 소년의 내면, 할아버지의 알듯 모를 듯한 말들이 섞여 강렬한 이미지의 언어들로 쏟아져 들어온다. 작가의 재주와 이야기가 조화를 이룬 그 순간은 찝찝함을 잠시 잊을 정도로 청량한 뭔가가 있었다. 그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을 미치오 슈스케에게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책 한 권 나아가 한 사람의 작가에 대한 평가가 뒤집히는 요란한 순간이었다. (내 머리 속에서 말입니다.)

 

 어린 아이의 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불쾌감까지 불러 일으켰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성장기 소년의 치열한 내면을 그린 기시 유스케의 <푸른 불꽃>,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 덴도 아라타의 세 아이들 이야기 <영원의 아이> 등이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났던 작품들이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있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결국 <달과 게>는 비슷한 소재의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두면서도 작가 스스로 기존의 자신 모습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래에 읽은 책들은 대부분이 흠 잡을 곳이 없다. 2011년 역시 장르 팬들에게 축복이 가득하다.

 

 별 다섯에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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