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

 

 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이 다름아닌 '웹진 판타스틱' 이었기에, 나는 SF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만남에 독일 작가 특유의 철학적인 내용까지 더해진 내용을 떠올렸다.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38번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나서도, 이 책은 장르소설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라고 꿋꿋하게 믿고 있었다. 내 스스로 순문학과 장르소설의 경계를 나누는 짓 자체가 상당히 경멸스럽지만, 그래도 장르소설 팬으로서 장르소설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목적에 부합하는 독서생활!

 

 이 책을 읽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그 목적에 부합하는 독서생활은 내가 달성한 것임과 동시에 실패한 것에 틀림없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나와 이 책에 실망한 내가 사는 세계가 있고, 그리고 둘을 객관적으로 상상해보며 둘을 조소하며 이 글을 쓰는 내가 사는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악보이고, 인간의 삶은 재즈처럼 비딱한 음악이다.

 

 프롤로그의 문장처럼 이 책 또한 두 천재의 머리 속에 감춰진 수많은 것들이 밖으로 끄집어 내어졌을 때, 그 즉흥의 연주가 만들어내는 삶의 선율을 따라가고 있다. 형사 실프. 그 이름이 뜻하는 '갈대'처럼 오직 그만이 그 선율에 이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출 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느낌은 아는 단어들로만 만들어진 해석 잘 안되는 영어문장을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다. 유식한 단어들의 나열이 단지 폼잡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맹렬하고 열정적으로 작품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더 열받는 책이다. 쉬운 책을 읽으며 노느라 이 정도 산을 오르는 것에도 헉헉댄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기 싫어서 악착같이 따라가게 되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장르소설로서는 약간 뻔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멜리 노통이 내게 보여줬던 가볍고 뻔한 느낌은 아니었다. 묵직한 이런저런 지적인 논쟁을 위해 살인과 유괴사건을 끼워 넣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작 사건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책을 대체 어떤 잣대에 맞춰 평가를 해야할까. 그런 의문에서 나는 사실 내 두개골을 쪼개고 날아가는 새를 생각한다.

 

 이 책은 재미있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하다.

 이 정도 감상이라면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훌륭한 증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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