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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엔젤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양수와 음수 사이에 자리한 0은 모든 이가 반드시 거치게 되는 입구입니다."
어둡고 차가운. 빛이 들어오고 나갈 틈이 없는 끈적하고 농밀한 깊은 물 속에 던져져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미 시간은 꽤 흘러 가둬진 폐 속의 공기는 해방되고자 미친듯이 아우성 치고, 팔다리는 필사적으로 물을 쥐고 발로 차며 살아보겠다고 허우적거린다...
주인공 뉴욕의 사립탐정 해리 엔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고 어두운 물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향한 방향엔 무엇이 있을까.
상쾌한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마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불쾌한 느낌의 축축한 바닥을 향해 폐 속의 마지막 숨을 뱉어내야 할 것인가.
아니, 필사적으로 향한 방향이 운 좋게도 자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생의 길이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딱딱한 천장이나 질기고 투명한 막으로 막혀있다면?
0의 공포.
0이 지닌 가능성 따위를 인생의 희망이라 설파하는 가식의 종교들에 찌든 사람들을 향해, 폴링엔젤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공포를 잔인한 방법으로 계몽시킨다.
환상소설이나 공포소설의 느낌을 강하게 가지면서도, 예상치 못한 절제미가 이 이야기를 현실 속에 묶어두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등장인물들이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작가의 강요는 없다. 분위기를 조성해 두고 선택하라고 이야기하는 짖궂은 악마. 윌리엄 요르츠버그는 0의 지점에서 독자와 등장인물들이 정신없이 오가는 장면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흔히 과거의 작품을 지금 읽어보면 촌스럽다거나 나이감안, 시대상황 감안해서 그 가치를 매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독자입장에서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스스로가 느낀 재미가 작품을 평가하는 전부가 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취향을 존중하고 작품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굴욕적인 순간이다. 특히나 장르소설에서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분쟁의 주요원인이고. 폴링엔젤은 가치 운운하기에 앞서 지금 현대의 왠만한 책들과도 싸움이 되는 멋진 장르소설이었다. 그래서 어떠한 피곤함과 굴욕없이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폴링엔젤은 아주 유명한 한국의 어떤 영화의 결말부와 상당히 닮았다. 그 영화의 원작에서 모든 사건의 원인은 상당히 황당하고 밋밋한 느낌이 있었는데, 영화로 넘어오면서 충격적인 결말로 치환되어 있었다. 난 감독의 역량을 꽤 높이 샀었는데, 폴링엔젤을 읽고나니 표절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신세를 진 것이 아닌가하고 그에게 실망스러웠다.
작가의 후기에서 윌리엄 요르츠버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겸손과 자부심이 공존하는, 후기마저도 0의 자리에서 기분나쁘게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딕슨 카보다도, 아이라 레빈보다도 더 섹시한 작품을 써낸 그에게 뭘 어쩌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